중소기업 근무 4년 차 A씨(31)는 지난달 연봉협상을 마쳤다. ‘난방비 폭탄’으로 한 달에 11만원이던 원룸 관리비가 18만원까지 오른 A씨는 큰 인상폭을 기대했으나 올해 연봉은 3.2% 오르는 데 그쳤다. 지난해 연간 물가상승률(5.1%)을 감안하면 사실상 연봉이 줄어든 셈이다. A씨는 “나갈 돈은 줄지 않는데 월급은 늘지를 않는다”며 “이제 뭘 줄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업 규모에 따라 근로자가 체감하는 고물가 여파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더 벌어진 대기업(300인 이상 사업장)과 중소기업(300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간 임금 격차 때문이다. 중소기업이 대기업보다 임금상승률이 낮다 보니 발생한 이 현상은 물가 체감 격차도 더 벌리고 있다. A씨 사례처럼 전체 일자리의 80%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게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은 현실이 되고 있다. 이 현상이 심화할 경우 중소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만 해도 대·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오히려 축소되는 모습을 보였다. 19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11∼2018년만 해도 60% 미만이던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임금 수준은 2020년 63.29%로 뛰어올랐다. 그만큼 격차가 좁아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2021년에는 61.72%로 다시 떨어졌다. 임금상승률 차이가 다시 벌어진 탓이었다. 2020년만 해도 -2.8%를 기록했던 대기업 임금상승률은 2021년 6.6%를 기록하며 ‘V자’ 반등했다. 반면 2021년 중소기업 임금상승률은 3.9%에 그쳤다.
임금 격차 확대는 서민층 살림살이를 더 팍팍하게 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물가 수준을 반영한 근로자 1명의 월평균 실질임금은 전년 동기와 동일한 354만9000원이었다. 물가가 너무 오르다 보니 실질임금이 정체된 것이다. 같은 기간 월평균 임금상승률은 대기업 7.3%, 중소기업 4.3%로 집계됐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실질임금이 더 깎인 것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고정 지출액이 늘어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월급에서 원천징수하는 직장가입자의 건강보험료율은 지난해 6.99%에서 올해 7.09%로 오른 데 이어 국민연금 인상도 예정돼 있다. 국회 연금개혁특위 자문위원회는 현행 9%인 국민연금 요율을 12% 또는 15%로 인상하는 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고물가에 속수무책인 사람들 비중을 줄이기 위해선 근본적으로 중소기업 임금상승률을 끌어올리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가 원·하청 기업의 수익성과 협상력 차이를 보완하는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하청업체들이 ‘납품가격 후려치기’에 속수무책인 상황 등을 해결하는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박세환 권민지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