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이후 이런저런 시 창작 수업에서 수강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매번 시를 가르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나의 피드백이 그들에게 오히려 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의문과 회의감을 품으면서도 독자 없던 습작생 시절의 외로움을 떠올리며 수강생들의 시를 읽고 도움이 될 법한 말을 준비해 간다. 얼마 전에는 동료 시인과 새로운 방식의 수업을 기획했다. 제목은 ‘낙서 수업’으로 선생 두 명이 함께 진행하는 일종의 합동 수업이다. 강단에는 동료 시인과 나, 두 사람이 선다. 수업은 매주 책 한 권을 선정해 선생 둘이 각자 읽은 뒤 독서 중 그때그때 드는 생각을 책에 메모하고, 낙서된 책을 서로 교환해 함께 낙서의 이력을 살펴보고 설명하는 강독 형식으로 진행된다.
첫 주의 교재는 서로의 시집이다. 꼼꼼히 시집을 읽으며 동료 시인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시집에 적었다. 시에 대한 비평적 판단이나 분석은 최대한 제하고, ‘회전목마’라는 시어가 등장하면 함께 탔던 회전목마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거나 이 문장은 어떻게 쓰게 됐는지, 왜 이 시의 제목을 이렇게 정했는지 등을 질문하는 방식이다. 독서는 언제나 일종의 대화이지만, 작가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마음으로 페이지의 빈 곳에 메모를 적으며 읽으니 정말로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문학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그 기원에 대해 여러 가설이 존재하겠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발생한 문학 장르는 서간문, 즉 편지의 일종이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대화하기 위해, 더 잘 말하기 위해 종이 위에 쓰일 수밖에 없는 말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언제나 일종의 말하기다. 그러므로 사적 장르이고, 감정과 관계에서 비롯한다. 낙서 수업의 기획은 문학이 사적 장르임을 잊지 않기 위한 일종의 노력이기도 했다. 현대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하지만 그 역시 누군가 발설하는 사적인 이야기 정도로 생각한다면 그리 무겁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