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보광동 술집들이 늘어선 골목길. 16일 오전 취업준비생 20대 한모씨가 빨간 목장갑을 끼고 허리를 숙인 채 길바닥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러다 다른 주민들과 힘을 합해 빗물받이 덮개도 열었다. 오래 묵어 시커멓게 변색된 담배꽁초들이 낙엽과 뒤섞여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한씨는 주저 없이 장갑 낀 손으로 꽁초를 주워냈다. 그대로 두면 폭우 때 꽁초와 낙엽이 쌓여 배수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
그는 “집게를 쓰는 게 오히려 손가락이 아프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면서 “이렇게 담배꽁초를 모으면 꽁초 무게만큼 돈을 받을 수 있다”며 더러워진 장갑을 흔들어 보였다.
용산구에 사는 한씨는 이날 구청에서 시행하는 ‘담배꽁초 수거 아르바이트’에 참여했다. 담배꽁초 1g당 20원의 보상금을 준다는 공고를 보면서다. 꽁초 1개비(약 0.5g)에 10원가량 벌 수 있는 셈이다. 지난해엔 어머니가 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이번엔 한씨도 동참했다.
한씨는 이날 1시간 동안 모은 담배꽁초와 앞서 모아온 꽁초 더미를 합쳐 보광동주민센터를 찾았다. 꽁초가 가득 담긴 비닐봉지에 고리 저울을 걸어 무게를 달아보니 3.25㎏이 나왔다. 계산상으로는 6만5000원을 받을 수 있지만, 구청 측은 월 최대 6만원(3㎏)까지만 지급한다. 남은 무게는 다음 달로 이월된다. 같이 꽁초를 주운 다른 주민은 “정말 많이 주워왔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씨는 “이 돈을 받아서 취업 준비도 해야 한다. 친구를 만나서 밥 먹을 때도 부담이 덜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종일 숙이고 꽁초를 찾아야 해서 허리는 아프지만 ‘좋은 일 한다’고 격려해주는 사람도 많다. 거리도 깨끗해지면서 느끼는 보람은 덤”이라며 웃었다.
이날 주민센터에 꽁초를 모아 찾아온 이들은 6명이었다. 한씨처럼 봉지 가득 꽁초를 든 채였다. 대부분 소일거리를 찾는 50, 60대 여성들이었다. 이모(66)씨는 “이렇게 용돈을 벌면 한 달에 한두 번 찾아오는 손녀 둘에게 과자 사 먹으라고 1만~2만원씩 쥐여주는 재미가 있다”며 “오늘은 두 달 동안 모은 꽁초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60대 공현복씨는 “주로 집 주변 골목을 치우는데, 하루만 안 치워도 담배꽁초가 가득 쌓인다”며 “내 집을 치운다고 생각하는데 용돈까지 버니 더 재미가 있다”고 했다.
용산구청은 배정한 예산 1200만원이 모두 떨어질 때까지 올해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단순 계산하면 600kg, 담배꽁초 120만 개비를 수거하게 된다. 구청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2000만원 예산을 편성했지만 700만원밖에 소진되지 않았다”면서도 “올해는 예상보다 참여율이 높아서 예산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전했다.
다만 단순 수거에 그치지 않고 꽁초를 재활용하는 등 지속가능한 사업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환경부는 2021년 9월 강북구와 협업해 담배꽁초 재활용 시범사업을 계획했다. 꽁초의 플라스틱 필터를 가구와 벽돌 등으로 다시 재활용하려 했지만 사실상 무산됐다. 담배꽁초에서 플라스틱 필터를 분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워 사업 타당성이 없었다는 결론이다.
하지만 꽁초 수거만으로도 의미는 있다. 용산구청은 환경미화 효과뿐 아니라 빗물받이가 막히는 등 침수를 예방하는 데 담배꽁초 수거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라고 보고 있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