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최근 어떤 콘텐츠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는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자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지금 대중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드라마가 뭐냐고 묻는다면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와 tvN 주말드라마 ‘일타 스캔들’을 꼽겠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에 따르면 지난 14일 기준 TV·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통합 드라마 부문에서 ‘일타 스캔들’(24.8%)이 3주 연속 화제성 1위에 올랐다. 2위는 ‘더 글로리’(9.7%)로 역시 3주 연속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중순 첫 방송된 ‘일타 스캔들’은 반환점을 돌아 본격적인 2막에 진입했다. ‘더 글로리’는 공개 7주차에 접어들었고, 다음 달 시즌2가 공개된다.
‘일타 스캔들’은 사교육 전쟁터를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물이다. 배우 정경호가 연기하는 주인공 최치열은 수학 일타 강사다. 부모들은 자식이 일타 강사의 강의를 최대한 앞자리에 앉아 듣도록 하려고 열 일 제치고 아침부터 학원 앞에 줄을 선다. 테스트를 거쳐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 ‘의대 올케어반’ 구성을 두고 학부모들의 암투도 벌어진다.
부모들에겐 자식의 성적과 자신의 경제력 그리고 정보력이 서로를 우대하고 무시하는 기준이다. 그들은 아주 떳떳하다. 흙수저 출신으로 잘 나가는 변호사가 된 장서진(장영남)은 아들들을 의대에 보내는 데 집착하면서 “경쟁에 도움이 안 된다면 친구는 필요 없다”고 말한다. 학력 콤플렉스가 있는 조수희(김선영)는 학원 원장·강사에 입시 커뮤니티까지 쥐락펴락하며 딸의 의대 진학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짓밟는다.
상위권 대학 진학이라는 성공을 위해 도덕성을 버리고 이기심으로 속을 채운 어른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고통받는다. 입시에 실패한 아이는 히키코모리가 되고, 부모가 경제력과 정보력에서 앞서지 못하면 아이는 기회를 박탈당한다. 꿈을 생각할 시간을 갖지 못하고, 잘못된 가치관을 주입시킨 부모 밑에서 아이는 크지 못한 채 망가진다.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 피해자의 복수극이다. 부와 권력이 있으면 어떤 악행도 용인되는 사회에서 비뚤어진 어른들이 어떻게 아이들을 산산조각낼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학폭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명확하다. 그리고 잘못된 어른들에 의해 학폭 피해자도 피해자, 가해자도 피해자가 된다.
드라마가 허구가 아닌 현실이어서 섬뜩하다. 17년 전 실제로 있었던 ‘고데기 사건’의 가해자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김은숙 작가는 “엄마는 내가 죽도록 때리면 가슴 아플 것 같아, 죽도록 맞고 오면 가슴 아플 것 같아?”라는 고교생 딸의 질문을 듣고 ‘더 글로리’를 쓰게 됐다고 밝혔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는 계속 발생한다. 책임 소재는 가려지지 않고, 누구도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지난해 광주 한 고등학교에서 동급생을 상습적으로 때리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시켜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한 가해 학생 6명 중 5명은 항소심에서 감형을 받았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죽음이 온전히 피고인들의 책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초범이고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콘텐츠의 기본 요소는 재미다. 창작자들은 사회적 문제를 다루면서도, 대중이 너무 심각해지기만 하지 않도록 오락 요소들을 적당히 배치한다. 시청자가 모든 드라마를 다큐멘터리로 볼 필요는 당연히 없다. 그리고 아마 드라마는 현실 해법을 제시하진 않을 거다. 그래도 이런 콘텐츠들을 보면서 인간성을 잃은 어른들 때문에 각자의 지옥에 빠진 아이들을 생각해보면 좋겠다. 콘텐츠가 가진 힘은 그런 거니까.
임세정 문화체육부 차장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