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몸은 ‘인공적 환경’과 불화한다

입력 2023-02-16 20:34
미국 보스턴에 사는 크리스가 아기의 기저귀를 갈아주기 위해 직접 만든 발걸이를 이용해 아기 발목을 들어올리고 있다. 이 간단한 기구는 팔 하나로 살아가는 크리스가 아기 기저귀를 혼자 갈지 못하는 장애를 해결해준다. 김영사 제공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은 장애라는 주제가 갖고 있는 급진성과 깊이를 잘 보여주는 책이다. “세상의 모든 몸은 제 주위의 건설환경과 매일 불화하며 살아간다.” 책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건설환경(built environment)’이란 자연 환경 이외의 모든 인공적인 환경을 가리키는 용어다. 우리 모두는 건설환경을 만나는 과정에서 크든 작든 불화, 또는 부적합을 경험한다. 어린이의 몸은 자동차에 맞지 않고, 노인의 몸은 신호등의 속도와 맞지 않는다. 장애인은 이 불화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불화는 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동안 평균에 의해 구축된 세상에 맞지 않는 몸들을 장애로 규정해왔다. 세상이 ‘다른 몸들’에 맞춰지지 않은 건 아닌가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 책은 장애를 “세상과의 미스핏(misfit)”으로 정의하면서 “단지 맞지 않는 것일뿐, 그의 몸을 망가진 것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미스핏을 교정할 책임이 몸에만 있는 것이냐고 묻는다. 세상을 재설계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냐고.


“장애와 비장애는 기본적으로 신체의 물리적 상태에서 비롯하지만, 기존 세계의 상대적인 유연성이나 경직성에도 좌우된다. 즉 세상이 다양한 상태와 단계의 몸과 어우러지며 그에 맞춰 변화 및 개조되는 능력에 의해서도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이 생겨난다는 뜻이다.”

저자 사라 헨드렌은 미국 올린공대 부교수로 장애와 디자인을 연구한다. 그는 이 책에서 장애인의 몸에 맞춰 세상이 개조되는 여러 사례들을 소개한다. 저신장자를 위한 강연대, 인공 팔과 다리, 희귀 유전질환을 앓는 아이를 위한 의자, 청각장애를 가진 대학생들이 사는 기숙사, 걸음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추가 시간을 부여하는 신호등 등이 나온다.

맨 앞에 나오는 어맨다의 이야기부터 흥미롭다. 왜소증을 가진 키 120㎝의 어맨다가 대학 강의에 초청돼 강의실에 들어선다. 그의 몸은 신장 150㎝ 이상인 사람들을 위해 설계된 강연대와 불화한다. 학생들은 어맨다를 위해 ‘키가 작은 사람을 위한 강연대’를 만드는 프로젝트에 착수한다. 작고 가볍고 튼튼한 강연대가 만들어졌다. 어맨다의 몸은 이제 강연대와 불화하는 ‘장애’를 겪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장애란 ‘다른 몸들’과 세상이 만나는 방식 때문에 생겨나는 게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키 작은 사람을 위해 탄소섬유판으로 제작한 휴대용 강연대.

저자는 우리가 안경에서부터 칼, 포크, 등산용 지팡이, 개에게 공을 던져주는 장난감 팔까지 온종일 우리 몸을 확장하는 사물들에 의존해 살아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도구들은 모두 몸이 세상을 헤쳐나가는 데 사용되는 보조기술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린이나 노인, 환자, 장애인의 몸은 좀더 많은 보조가 필요할 뿐이다. 이렇게 보면 “존재의 예외적 상태로 보였던 장애가 사실 존재의 극히 평범한 상태였음”을 알게 한다. 저자는 보조, 의존, 취약성은 “인간의 가장 진정한 상태”라고 말한다.

이 책은 장애의 언어를 깊고 넓게 확장한다. 서문 ‘누구를 위해 지어진 세계인가?’에서부터 저자의 참신한 관점에 붙들리게 된다. 산업사회가 구축한 시간 개념과는 다르게 흘러가며 다른 사고 방식으로 안내하는 장애인 집단의 ‘불구의 시간’을 묘사하는 마지막 장 ‘시계’는 특히 우아하다.

저자는 다운증후군을 가진 아들을 키우는, 세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다. 그는 장애인 아들 때문에 장애 공동체에 접속했고, 불구의 시간을 함께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서 깊은 배움의 보고를 발견했고, 인류의 모든 구성원을 생각할 수 있는 렌즈를 얻었다고 고백한다. 그에 따르면 장애는 “이 세상이 얼마나 미완성인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모두에게 현 세상의 형태를 만들고 다시 만들어나가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