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시작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3년째 마무리되지 않고 있다. 슬롯(특정 시간에 활주로 등 공항 시설을 이용할 권리), 운수권 이전 등을 조건으로 공정거래위원회 승인을 받았지만 유럽연합(EU)과 미국, 일본 등의 승인 절차가 남아 있다.
이들 중 한 곳이라도 승인하지 않으면 통합 항공사 출범은 불가능하다. 각국은 합병으로 인한 항공업계 경쟁 제한 여부를 면밀히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종 업계 내에서 이뤄지는 기업결합인 만큼 독과점 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모두 국내 기업이지만 해외 경쟁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국내 기업의 인수·합병(M&A)이 외국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EU 집행위원회, 미국 등은 국외에서의 행위가 국내 경쟁법에 위반되는 경우 관할권을 갖는다는 효과주의 이론을 따른다. 공정위도 2002년 흑연전극봉 국제카르텔에 가담한 미국, 독일, 일본 등의 6개 기업을 제재한 바 있다.
슬롯 반납에 ‘메가캐리어’ 효과 반감
공정위는 지난해 2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승인하며 국제선 슬롯과 운수권 반납을 의무화하는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운임 인상 제한, 공급 좌석 수 축소 금지 등도 명령했다.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마무리한 날로부터 10년간 이 같은 시정 조치를 이행해야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쳐지면 통합 항공사는 한국에서 출발하는 국제선의 48.9%를 점유하게 된다. 독점 운항하는 국제선 노선이 10개, 60% 이상 운항하는 노선이 29개에 이르게 된다. 특히 미국(5개), 유럽(6개) 노선의 경우 점유율은 더욱 높아진다. 이른바 ‘경쟁 제한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통합 항공사의 미국 노선 점유율은 78~100%, 유럽 노선 점유율은 69~100%에 이를 전망이다.
올해 안에 합병을 마무리하려던 대한항공의 계획은 EU의 2단계 심사 가능성이 높아지며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대한항공은 지난달 13일 EU에 기업결합 신고서를 제출했다. 이와 관련해 로이터통신은 ‘EU 집행위원회가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2단계 심사를 17일 발표할 것’이라고 지난 10일 보도했다.
EU가 2단계 심사에 들어가는 경우 대한항공의 추가 슬롯, 운송권 반납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2단계 심사를 한다는 것은 현재 대한항공이 제시한 방안으로는 경쟁 제한 해소가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승인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대 125일까지 가능한 2단계 심사를 통해 EU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는 시정안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15일 “오히려 EU의 2단계 심사에서 경쟁제한 우려 해소 방안을 충분히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도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만큼 조만간 긍정적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해 11월 승인을 유예한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이 지난해 8월 미국 법무부의 요청대로 슬롯 반납 내용이 담긴 시정안을 제출해 심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추가 심사가 이어진 것이다. 이 또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중복으로 취항하는 미국 노선의 독과점 정도를 판단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뒤따른다. 일본 경쟁 당국은 심사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시장총국은 지난해 12월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대한항공이 중국 시장총국의 요청에 따라 9개 노선의 슬롯 이전을 지원하는 시정안을 제출한 뒤였다.
임의신고국인 영국은 지난해 11월 대한항공에 시정안을 요구했다. 영국 시장경쟁청(CMA)은 합병 이후 항공권 가격 인상과 서비스 질 하락 등이 예상된다며 독과점을 해소할 시정안을 요청했다. CMA는 3월 23일까지 승인 여부를 확정하기로 했다.
다수 경쟁 당국이 불승인 대신 시정안을 요청한 만큼 결론적으로는 ‘빅딜’이 성사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승인 과정에서 슬롯, 운수권 반납이 잦아지면 기대했던 ‘메가캐리어’(초대형 항공사) 탄생 효과가 작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대한항공의 사업 확장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추가적인 슬롯, 운수권 반납이 이어지면 기업결합 효과는 작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화-대우조선해양 빅딜은
이제 막 발을 뗀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 인수 절차 역시 경쟁 제한성 여부가 관건이다. 지난해 EU 집행위원회는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불허했다. 당시 EU 집행위원회는 “두 기업의 합병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 독과점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업결합으로 인해 경쟁 제한이 발생할 수 있어 승인하지 않은 것이다.
한화그룹과 대우조선해양은 동종업계가 아니기 때문에 승인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된다. 한화그룹은 지난해 12월 16일 대우조선해양 지분의 49.3%에 해당하는 신주 발행에 대한 본계약을 체결했다. 공정위는 계약 체결 3일 후 기업결합 신고 서류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지상의 한화디펜스, 항공·우주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 바다의 대우조선해양이 합쳐지면서 육·해·공을 포괄하는 방산 계열화가 이뤄질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완전히 같은 업종은 아니지만 비슷한 업종 간의 결합이 이뤄지는 부분이 있어 이 또한 경쟁 제한성 여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