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서울지하철 5호선을 타고 가던 중 가방을 분실한 50대 여성 A씨는 지난 4일 행당역 고객안전실을 찾았다. 절도 범죄를 의심한 A씨는 “가방이 사라지는 장면을 CCTV로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역 관계자는 “경찰관을 대동하거나, 경찰서 사건 접수 공문을 가져오라”며 거부했다고 한다. A씨는 이동 동선에 있던 신금호역 왕십리역 마장역 답십리역도 찾아갔지만 역시 모두 거절당했다.
공공장소 CCTV에 촬영된 본인 영상 열람을 둘러싼 갈등이 빈번해지고 있다. ‘나를 볼 권리’와 ‘타인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지 않아야 할 책임’이 충돌하면서 논란이 계속되는 것이다. 경찰청은 지난해 11월 ‘CCTV 열람·제공 절차 안내’까지 발간해 ‘경찰관 입회나 신고 없이도 열람할 수 있다’는 기준을 세웠지만, 현장에서는 혼란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핵심 쟁점은 타인의 얼굴 노출이다. CCTV 영상에서 타인을 확인하는 것은 개인정보보호법상 ‘제3자 개인정보 유출’에 해당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마다 법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경찰 동행을 요구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 경찰은 경찰력 낭비를 우려한다. 경찰 관계자는 15일 “민사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까지 신고로 이어져 조사관의 업무부담이 되고 있다”고 했다.
타인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비식별화 조치’를 거치면 본인이 찍힌 CCTV를 확인할 수 있지만, 시간이 든다는 문제가 있다. 서울교통공사 측은 “지하철역 사무실에 모자이크를 할 수 있는 인력과 기술이 없다”며 “정보공개청구로 CCTV 통합관제센터를 통해서 받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신청 후 확인까지 한 달 가까이 걸리기 때문에 최대 30일까지 보관하는 역내 CCTV 영상이 지워질 확률도 높다.
비식별화 조치 비용도 문제다. 지난달 30일 70대 할머니가 부산동부경찰서 소속 관할 지구대를 찾아 CCTV 정보공개청구를 했다가 비용 수백만원이 든다는 경찰관의 말을 듣고 포기했던 사례도 있다. 개인정보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 한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 문제가 불거졌을 당시 어린이집에서 CCTV 영상 제공을 거부해 문제가 됐다”며 “어린이집 측에서 비식별화 조치를 이유로 거액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개인정보위 분쟁조정위원으로 활동하는 김보라미 변호사는 “영상 비식별화 조치가 엄청난 기술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다”며 “CCTV를 관리하는 행정기관은 정보 주체가 나와 있는 영상이라면, 다른 사람의 모습을 모자이크한 캡처본 사진이라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개인정보위도 ‘선 열람, 후 조치’의 방향으로 법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정당한 이해관계자라면 CCTV 영상을 우선 제공하고, 허위로 요청하는 사람에게 추후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법 개정이 논의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취지의 ‘개인영상정보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은 2020년 11월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 정무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