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의 세계에 짙은 비관론이 몰려오고 있다. 지난달 국내 출간된 미국 지정학전략가 피터 자이한의 책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은 2020∼2030년대의 세계를 규정할 두 가지 거대 변수로 미국 주도 세계질서의 붕괴와 인구구조 붕괴를 들고 이것이 세계의 운송, 금융, 에너지, 산업 자재, 제조업, 농업에 어떤 충격을 미칠지 묘사한다. 자이한은 이 책에서 지난 70여년 동안 세계가 누린 평화와 번영은 이례적인 사건이었다면서 “그 시기는 이제 끝났다. 그리고 그런 시기는 이제 우리 살아생전에 절대로 다시 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나온 누리엘 루비니(64) 미국 뉴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의 책 ‘초거대 위협’도 “불행히도 이 길었던 상대적 번영의 시기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면서 “우리는 이제 극심한 불안정과 갈등, 혼돈의 시대로의 정권교체를 앞두고 있다”고 얘기한다.
루비니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고한 것으로 유명하다. 비관론적 경제 전망을 쏟아내 ‘닥터 둠’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는 이번 책에서 “지금 우리는 적어도 10개의 초거대 위협에 직면해 있다”면서 1930년대의 대공황과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보다 더 혹독한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한다.
루비니 교수가 꼽은 ‘초거대 위협(megathreats)’은 부채 증가, 장기간 이어진 저금리 정책과 과도한 양적 완화, 스태그플레이션, 통화 붕괴, 탈세계화, 미·중 갈등, 고령화와 연금 부담, 불평등 심화와 포퓰리즘 득세, AI(인공지능)의 위협, 기후위기 등이다. 이중 기후위기라든가 AI로 인한 기술적 실업, 불평등, 포퓰리즘, 인구감소 같은 문제들은 그동안 여러 학자들에 의해 거론돼온 위기들이다. 미·중 갈등을 중심으로 한 지정학적 위기 역시 근래 관심이 집중된 이슈라고 할 수 있다. 탈세계화에 대해서는 자이한이 ‘미국 없는 세계’라는 관점에서 꾸준히 경고해 왔다. 초저금리와 부채 문제는 영국의 금융사가 에드워드 챈슬러가 지난 달 국내 출간된 ‘금리의 역습’에서 상세하게 논했다.
루비니 교수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위기는 부채다. 그는 2008년 금융위기 이전에도 부채 문제를 거듭해서 경고했다. 2021년 말 세계 부채(민간 및 공공)는 세계 GDP의 350%를 넘어섰다. 선진경제의 부채 수준은 GDP의 420%, 중국은 330% 수준이다. 국가와 기업, 은행, 가계가 모두 상환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고속성장과 초저금리 시대에는 이 부채를 감당할 수 있었지만 이제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급격히 인상해야 하기에 더는 지속할 수 없게 된다. 부채 붕괴 사태는 채무불이행과 파산, 경기침체 등으로 이어진다.
느슨한 통화·재정 정책으로 실탄을 소진해온 정부도 부채 붕괴를 구제할 여력이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정부에게는 공식적 부채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암묵적 채무’가 있다는 점이다. 노인의료 및 연기금의 미적립 채무, 기후변화 대응 비용, 미래의 범세계적 유행병 대응 비용 등이 그것이다. 노령화로 연금, 의료보험, 장애수당 등 사회안전망에 들어갈 재정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과세 수입은 줄어든다. 인구 감소와 경기침체 때문이다.
루비니는 “암묵적 부채는 심각한 시한폭탄이자 초거대 위협”이라며 “선진국에서 전례 없는 규모의 이민자를 흡수하더라도 가까운 미래에 정부는 고령 노동자에게 연금 및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오늘날 우리가 갇혀 있는 이 부채의 함정은 스태그플레이션을 예고한다. 인플레이션이 수반된 장기적인 경기침체. 미국의 인플레이션율은 2022년 5월에 연준을 비롯한 주요 중앙은행의 목표치인 2%를 훨씬 웃도는 8.6%까지 상승했다. 연준의 고금리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데 루비니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타난 공급 위기가 언제든 또 터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미·중 사이의 신냉전은 글로벌 공급망과 수요에 혼란과 파괴를 초래할 수 있는 초거대 위협이다.
공급 충격은 인플레이션을 더욱 상승시키고, 성장을 저해한다. 경제적 불안과 불평등의 심화는 포퓰리즘으로 이어지고, 자유무역과 세계화에 대한 반발은 더욱 격화된다. 탈세계화는 성장의 엔진을 끄고 말 것이다. 루비니는 “다가오는 위기에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아마 ‘거대 스태그플레이션 부채 위기’ 정도가 적당하리라”고 말한다.
루비니는 경제, 금융, 지정학, 인구학, 기술, 환경 등을 넘나들며 오늘의 세계를 향해 다가오는 10가지 초거대 위협을 보여준다. 그것은 영화 ‘돈 룩 업’ 속 과학자들이 경고하는 지구를 향해 돌진해 오는 소행성들처럼 보인다.
여기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는 국제적 협력, 강력한 성장, 혁신적 첨단기술이 기대를 걸어볼 수 있는 요소라고 본다. 그러면서도 위기를 막아내려면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지만 기후위기에 대한 세계의 대응이나 고조되는 지정학적 갈등을 보면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다고 비관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