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은 지난 몇 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사하고 화창하게 다가온다. 아마도 코로나19 팬데믹이 우리 일상을 더는 크게 흔들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3년 전 이맘때를 돌이켜보면 체험해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없는 어떤 처음을 경험했고, 이에 익숙해지느라 우리의 본디 일상과 결별했다. 그런데 인간은 참 대단한 것이 사피엔스답게 적응하는 인간(Home Adaptans)의 모습을 보였고 더 나아가 새로이 진화하는 인간(Home Evolutis)의 모습을 보였다. 인류 역사는 이렇게 발전해 왔고 또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년의 세월을 주마간산 격으로 되돌아보면 2020년 1월 20일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이로부터 1년이 좀 지난 2021년 2월 26일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방역과 관련해 풀었다 조였다를 숱하게 겪었다. 첫 확진자 발생 이후 정확히 3년이 된 지난 1월 20일 한국에서의 총확진자는 3000만명에 이르렀고 사망자는 3만3185명으로 집계됐다. 긴장과 안도의 교차 곡선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긴 터널의 끝에 있음을 기대하는 요즘이다.
발전이란 과거 경험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기록에 의해 출발한다. 실상과 경험에 대한 가감 없는 기록이 출발점이다. 그래야 어제의 쓰라린 아픔이 내일의 명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지속가능의 화두를 다양한 모습으로 다시 불러냈다. 지속가능이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가 다짐하는 약속이다. 이러하기에 지속가능에는 어제에 대한 기억과 오늘에 대한 성찰과 내일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종료 시점이 다가오며 기억과 성찰을 제대로 담아낸 백서가 지속가능을 담보하는 첫걸음이다.
2015년 메르스 사태는 상대적으로 짧게 70일간 지속했지만 20.4%의 높은 치사율을 보이며 한국 사회를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게 했다. 중앙정부, 지방정부, 학계, 전문가 단체에서 총 31종의 백서를 발간했다. 백서 풍년이라고 할 만큼 많은 백서가 발간됐다. 그러나 정작 백서 요건을 제대로 갖춘 교본이 될 만한 것은 별반 보이지 않았다.
위기에 대한 추적이자 미래를 향한 성찰의 도구인 백서에 거는 기대가 크다. 왜냐하면 이번 팬데믹은 우리 사회를 낱낱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민낯은 극단의 위기 상황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법이다. 우리 사회의 긍정적 에너지는 물론이고 취약함, 심지어는 폭력성도 그대로 드러났다.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잠재돼 있던 문제는 물론이고 한국인이 지닌 마음의 습속까지 속속들이 나타났다. 백서는 연대기적 기술에 근거한 사건이나 사태의 나열 이상이어야 한다. 백서에는 가장 경계해야 할 것과 가장 걱정해야 할 것과 가장 놓치기 쉬운 것들이 담겨 있어야 한다.
코로나 상황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위험의 정치화이다. 과학적 전문지식이 담당해야 할 일을 정치 공학이 꿰차고 들어올 때 어떤 현상이 혼란스럽게 벌어졌는지 여러 번 보았다. 가장 걱정해야 하는 것은 위험의 하향 축적이다. 감염 위험은 균등하지만 그것의 영향이나 감내 여부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그대로 반영해 나타난다. 실제로 가파른 K자형 양극화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가장 놓치기 쉬운 것은 모두가 공공의 이름으로 휩쓸리며 개인의 인권이나 개인의 가치, 다양한 목소리를 틀어막는 현상이다. 우리 사회에서 공공의 이름으로 인권 침해, 혐오, 낙인이 종종 용납되곤 했다.
위기에 대한 기록들이 다음을 위한 교훈으로 이어지려면 현상에 대한 다양한 쟁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며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풍부하게 담아내야 한다. 자신들의 정책이나 활동 홍보용은 물론이고 특정 의견에 치우쳐서도 안 된다. 돌이켜보면 3년 동안 가장 극심했던 공포는 확진자·사망자와 같은 숫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고리에서 솟아 나왔다. 국민 생명을 다루는 정부가 미덥지 않다거나 특정 입장이 과도하게 휘감는 것이 그 고리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얘기한다. 신종 감염병 팬데믹은 다시 또 오게 돼 있다고 말이다. 그때에도 처음 겪는 듯이 허둥대지 말아야 할 것이다. 지난 일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닥쳐올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철저하게 예지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현대판 코로나 팬데믹 징비록(懲毖錄)을 만들어야 하는 지금이다.
박길성(고려대 명예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