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행복’ 안겨주는 앙증맞은 봄의 전령

입력 2023-02-15 21:48 수정 2023-02-15 22:01
경북 칠곡군 가산산성 동문 아래 펼쳐진 복수초 군락지. 진남문에서 약 3.6㎞, 2시간 거리다. 한국관광공사 제공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봄은 오고 있다. 일부 지방에서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지만 그 눈을 뚫고 봄소식을 전하는 꽃소식이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다. 차가운 눈을 뚫고 강렬하게 황금빛 꽃을 피우는 복수초가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린다. 복수초(福壽草)는 눈을 녹이며 핀다고 눈색이꽃, 눈 속에 피는 연꽃 같다고 설연화(雪蓮花), 설날 무렵 꽃을 피운다고 원일초(元日草), 황금 잔처럼 보인다고 측금잔화(側金盞花) 등 많은 이름을 지녔다. 꽃말은 ‘영원한 행복’으로 ‘복(福)과 장수(長壽)’를 상징한다.

경북 칠곡군에 자리한 가산산성(사적 216호)에 덜 알려진 복수초 군락지가 있다. 산성은 걷기 좋은 숲길이 있어 요즘 트레킹 명소로 인기를 끄는 곳이다. 봄이면 가산산성에도 여러 꽃이 고개를 들지만, 가장 사랑받는 꽃은 복수초다. 땅 위에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며 힘든 계절을 이겨낸 생명력을 느끼게 해준다.

복수초가 등산객을 맞이하는 가산산성은 칠곡을 대표하는 역사 유적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인조 때 축조하기 시작했다. 인조와 숙종, 영조 때 각각 내성과 외성, 중성을 차례로 쌓았다. 6·25전쟁 당시 이곳에서 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가산산성 성곽 실측 조사에 따르면, 둘레 11.1㎞에 면적 2.2㎢로 규모가 크다.

눈을 뚫고 노란 꽃망울을 터뜨려 힘든 계절을 이겨낸 생명력을 느끼게 해주는 복수초. 한국관광공사 제공

진남문에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진남문은 가산산성 입구 역할을 하는 문으로, ‘영남제일관방’이라는 현판이 위풍당당하다. 복수초를 보려면 진남문에서 동문까지 약 3.6㎞ 올라야 한다. 길이 험하지 않고 서어나무, 층층나무, 물푸레나무 등 숲이 우거져 등산하기 좋다. 중간에 암석이 수북하게 쌓인 암괴류와 서로 꼭 안은 혼인목 등 볼거리가 있어 심심하지 않다.

2시간쯤 천천히 오르면 동문 아래 펼쳐진 복수초 군락지에 닿는다. 숨을 고르며 땅 위에 불쑥 올라온 노란 꽃과 눈을 맞춘다. 위성안테나처럼 활짝 핀 꽃잎 가운데 진노랑 꽃술이 빼곡하다. 제주에서는 복수초가 2월에도 피지만, 산속에 있는 가산산성 복수초는 3월초에야 볼 수 있다. 복수초가 가장 많이 피는 시기는 4월로, 5월이면 사라진다.

시간도 챙겨야 한다. 해가 나면 꽃잎을 조금씩 열기 시작해, 해가 떠 있는 동안 피고 해가 지면 꽃잎을 닫는다. 흐린 날이나 비 오는 날에도 햇빛이 없으면 꽃잎을 열지 않는다. 활짝 핀 복수초를 보고 싶다면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에 찾아가자.

복수초 군락지 앞에 출입 금지 팻말이 있다. 무분별한 채취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눈으로만 보고 만지지 마세요. 여기에서 계속 사랑받고 싶어요’라는 문구가 애처롭다. 가산산성 복수초는 자생종으로, 잘 보호하지 않으면 개체 수가 감소한다. 자연은 제자리에 있을 때 진정한 아름다움을 만나는 법. 복수초를 오래 보려면 우리가 먼저 보호해야 한다.

복수초 감상을 마친 뒤에는 동문을 돌아본다. 예스러움이 남은 동문과 날개처럼 뻗은 성곽이 인상적이다. 동문 근처에 180년 동안 유지된 산성마을 터와 관아 터도 있다. 산속에 마을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금은 터가 남았을 뿐이지만, 점차 복원할 계획이다.

거대한 가산바위. 한국관광공사 제공

마지막으로 놓치면 안 될 곳이 가산바위다. ‘가암’이라고도 불리는데, 수십 명이 앉아도 될 만큼 널찍하다. 가산바위에 서면 유학산과 황학산, 도덕산 등 칠곡 일대 산과 대구 시내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주변을 둘러보기만 해도 가슴이 확 트인다. 드라마 ‘왕이 된 남자’가 이곳에서 촬영됐다. 가산바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좀 더 걸으면 북문에 닿는다. 북문 근처에도 복수초 군락지가 있다. 북문은 등산객이 많이 찾지 않아 한적하게 복수초를 만나기 좋다. 동문까지 이어진 길에 비해 험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구상문학관. 한국관광공사 제공

칠곡 여행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곳으로 구상문학관이 있다. 프랑스 문인협회가 선정한 ‘세계 200대 문인’에 든 구상 시인을 기념하는 공간이다. 구상 시인은 6·25전쟁 이후 왜관에 정착해 문학 활동을 펼쳤다. 문학관은 시인이 창작 활동을 한 관수재와 문학 세계를 담은 전시실로 구성된다. ‘강’ 연작시 60여 편을 발표한 시인이 강을 보며 시상에 잠기고, 시인이 사용한 타자기가 전시된 관수재에서 그 흔적을 더듬어보자.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