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도 많이 온다”… 법망 교묘하게 피해간 ‘흡연카페’

입력 2023-02-15 04:08
서울 은평구의 한 흡연카페 외관. 미성년자들이 실내에서 음료를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지만, 이곳은 금연 의무 규정이 없는 소매점으로 운영하면서 단속을 피해갔다.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며 음료를 마실 수 있는 ‘흡연카페’를 미성년자들이 심야까지 버젓이 이용하고 있지만 모호한 규정 탓에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부 업체는 한 점포 내에서 흡연 공간만 따로 떼 금연 의무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소매점으로 등록하는 ‘꼼수’로 법망을 피하는 상황이다.

지난 13일 오후 9시쯤 국민일보가 찾아간 서울 은평구의 한 흡연카페는 테이블 11개 중 8개가 손님으로 찰 정도로 북적였다. 입구엔 ‘전 좌석 흡연’이란 문구가 붙어있었고, 약 110㎡ 크기의 카페 내부는 뿌옇게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가게 한쪽의 공기청정기에는 연신 ‘매우 나쁨’ 표시가 들어왔다. 유리 칸막이로 분리된 계산대와 커피 제조 공간에선 커피를 포함한 음료와 컵라면, 핫도그 등을 판매했다. 이용자 상당수는 앳된 얼굴을 한 미성년자였다. 이들은 “소년원에서 뭐 했냐”는 대화를 나누거나, 운전면허증을 동료에게 보여주며 “비싸게 주고 산 위조 면허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인근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홍모(17)군은 “중학교 때부터 1주일에 한두 번은 이곳에 와서 담배를 피우며 놀았다”며 “이 근처 학생들에게는 담배 피울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초등학생들도 많이 온다”고 전했다. 손모(18)양은 “여기는 신분증 검사도 하지 않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돼 자주 오는 편”이라고 했다.

카페 측은 신분증 검사를 하거나 미성년자의 출입을 막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가게 운영자는 “직접 담배나 술을 파는 곳이 아니어서 신분증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며 “가끔 애들의 신고로 경찰이 단속을 나오긴 하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돌아간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흡연카페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카페 직원이 일부 어려 보이는 이용자에게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했지만 “없다”고 답하자 별다른 제재 없이 입장을 시켰다. 직원은 “담배를 판매할 땐 신분증 검사를 한다”고 말했다.

식품위생법에 따라 식품접객업소는 금연 의무 구역에 해당된다. 하지만 흡연카페 일부는 신고 의무가 없는 소매점으로 등록하는 식으로 단속을 피해간다. 은평구 흡연카페의 경우 커피를 제조하는 공간인 14㎡만 ‘휴게음식점’으로 신고하고 나머지는 소매점으로 운영하는 중이다. 마포구 카페의 경우 도·소매점으로 등록돼있었다. 음료를 제조하지 않고 자동판매기로 판매하는 방식이다. 흡연카페에 단속을 나갔던 한 경찰은 “미성년자들을 귀가 조치하는 등 계도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 업소를 제재할 근거가 마땅치 않다”고 토로했다. 은평구청 관계자도 “현장 조사도 나갔지만, 교묘하게 법망을 피하고 있어 서울시에 법률해석을 받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청소년의 공개적인 흡연을 제재할 근거도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실내 전면 금연을 추진해 사각지대에서 생기는 문제를 막으려 한다”면서도 “현행법상 담배를 피우는 미성년자 자체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 제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