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학교에서 사라지는 예술교육

입력 2023-02-15 04:02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에서 보듯이 교육은 병역의무 이행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가장 뜨거운 감자다. 연전에 관심을 집중시켰던 ‘스카이캐슬’이나 요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일타 스캔들’ 같은 드라마가 잔인하게 보여주듯이 ‘입시’에 포박당한 ‘교육’의 현실은 헬조선의 밑변을 이룬다. 교육은 국가의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운운은 지금 한가한 소리다. 누구나 교육의 사회적 기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 자식이라는 현실로 소환되는 순간 그 모든 숭고한 가치는 실종돼 버린다.

어느 때인지 정확히 집어낼 수 없지만 이 땅의 교육 현장이 드러나는 영상 속엔 ‘국영수’만이 존재한다. 1970년대 그 가난한 시절에도 미대하고 아무 인연도 없었을 우리는 데생과 수채화를 그렸고, 음대는 아무도 가지 못했지만 합창대회와 합주부 특활이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닌 일류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지금 이 나라의 중등교육 현장은 어떤가? ‘음미체’로 묶어 불리는 예체능교육은 열악한 인프라와 예산, 무엇보다도 ‘국영수’라는 입시 주요 과목에 밀려 점점 그 형체가 미미해지고 있다. 수학자로 알려진 피타고라스가 이탈리아 반도에서 아카데미를 열었을 때 음악은 주요 네 과목 중 하나였다. 19세기 세계를 지배하던 대영제국의 귀족 사립학교 커리큘럼에서 협동심과 리더십의 함양은 축구 과목에서 이뤄졌다.

학교 교정 안에서의 예술교육 실종은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중산층 이하 저소득 계층의 아이들은 평생 제대로 된 예술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이는 자본주의 국가의 최강국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에 반기를 들고나온 인물은 미국의 전 대통령 버락 오바마다.

오바마는 상원의원 시절에도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했으며 대통령 임기 동안에도 예술교육의 중요성을 내내 강조했다. 2011년 발간된 ‘예술교육에의 재투자: 창의적 학교들을 통한 미국의 미래 얻기’는 그의 예술교육 정책 방향을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현장 예술가, 문화계 리더, 예술교육 담당자 등 90여명의 문화예술 전문가로 이뤄진 오바마 예술정책위원회는 미국의 창의성은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 영화관 등의 예술 작품을 통해 완성되며 이를 위해 예술교육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21세기의 시대적 환경에서 학생들이 과학과 수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큼 창의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리노이주의 저소득층 지역 고등학교에서 시범적으로 행해진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상원의원 오바마는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가동한 고등학교가 그렇지 않은 고등학교보다 훨씬 많은 명문대 진학률을 보이고 있음을 주목했다.

그의 예술정책위원회가 생각하는 21세기 예술교육의 목적은 국가와 민족의 이름을 드높이는 더 많은 예술가의 양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진취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도모해가는 보다 많은 문화시민을 길러내는 데 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예술가들과 교육기관 사이의 협력과 열정이 우선적으로 필요하지만 더 나아가서는 정책 입안자들과 공공적 민간, 그리고 기업의 삼자 협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학교에서 사망한 예술교육을 이제는 공공 영역이 담당해야 할 때가 됐다. 정확히 말하면 학교와 공공기관 및 시민사회 영역이 본격적으로 협업을 펼쳐야 한다. 밤늦게까지 켜진 학원가의 불빛은 우리를 무력하게 하지만 외면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시도가 필요할 때다. 아직 늦지 않았다.

강헌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