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공지능(AI) 기업 오픈AI의 ‘챗GPT’가 국내 교육계에도 나비효과를 불러오고 있다. 일부 발 빠른 학생들의 챗GPT 활용 과제 작성 등 사례가 보도되면서 새 학기를 앞둔 학교 현장에선 교육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요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교육부 관계자와 교육학자부터 학교 현장의 교사와 학부모, 학생에 이르기까지 ‘이런 질문에 이렇게 답하더라’는 체험담을 바탕으로 한 공론의 장이 열리고 있다. 교수·학습법의 변화, 학교 시험의 미래, 교사의 역할 변화 등 논의 주제도 다양하다. 교육 분야에서 언제나 뜨거운 주제인 대학 입시도 AI를 피해갈 수 없다.
AI가 돕는 대입 전략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EBS의 ‘위대한 수업, 그레이트 마인즈’에 나와 AI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어떤 패턴을 파악하고 이를 분해한 뒤 새롭게 조합하는 일, AI가 잘하는 일이다. AI가 대체하기 가장 쉬운 일은 정보를 받아 분석하고 축적한 뒤 결과를 도출하는 데이터 분석 업무다.” 대입 전략을 세우는 일이 바로 여기에 속할 수 있다.
대입 전략은 ‘수시 6회, 정시 3회의 지원 기회를 어떻게 잘 활용할까’로 요약할 수 있다. 정보량과 이를 분석해내는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 분석해야 할 정보는 방대하다. 먼저 대학이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모집요강이 기초 자료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운영하는 대입 포털 ‘어디가’에도 많은 데이터가 축적돼 있다. 공부하기에도 바쁜 수험생들은 이런 외부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신의 성적을 차근차근 대입하며 최적의 조합을 찾아내야 한다.
대입 전형은 대학마다 모집단위마다 다르다. 수시에서 합격하면 정시에 지원하지 못하는 등 여기저기 ‘함정’도 도사린다. 수험생의 일반적 대응은 돈을 들여 사설 입시 컨설턴트를 고용하거나 발품을 파는 것이었다. 가정환경에 따른 정보 격차는 불가피한 게 현실이다. 하지만 고도화된 ‘AI 대입 컨설턴트’가 등장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데이터베이스 접근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입시 컨설팅 업체들은 나름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주로 합격과 불합격 자료인데 이를 ‘어디가’ 같은 공개 정보와 수험생 정보를 엮어 결론을 도출해준다고 홍보한다. 대입 제도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학부모와 수험생은 유혹에 취약하다. 만약 정부와 대학이 대입 정보 공개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고 범용 AI가 등장한다면 정보 격차에 따른 불이익을 줄일 수 있다.
고교학점제 도입 시 AI ‘날개’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학교 현장에서 AI 활용이 더 활성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장홍재 교육부 책임교육정책관은 17일 “고교학점제가 도입되고 내신 성적 산출 방식이 절대평가로 전환돼(1학년 성적 절대평가 전환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음) 경쟁 압력이 줄어들면 수업에서 다양한 시도가 일어날 것이다. AI도 수업을 변화시키는 주요 요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교 내신이 절대평가로 전환되면 중간·기말고사 같은 지필평가만으로 성적을 내기 어려워진다. 다양한 방식의 평가를 통해 학생과 학부모가 납득 가능한 학점을 부여해야 한다. 일단 과제형 시험의 경우 AI 도움을 얼마나 받았는지 검증하기 어려워 지양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대신 중장기 프로젝트형 수업에서 학생과 교사 그리고 AI가 협업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형 평가가 활성화될 수 있다. 교육부도 AI가 교실로 들어오는 것을 막을 생각이 없으며, 오히려 권장하는 분위기다. 따라서 AI와 협업해 문제를 해결하는 등의 ‘AI 리터러시’가 강조되면서 학생을 평가하는 요소도 될 것으로 예측된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방식도 바뀔 수 있다. 가깝게는 수능 예측 서비스가 활성화될 수 있다. 이미 학원가에선 이뤄지는 일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최근 출제 경향과 패턴, EBS 교재 등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종종 족집게처럼 문항을 예측해 화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AI가 논술·서술형 수능 도입의 마중물이 될 수도 있다. 현재 교육계는 미래형 대입 제도를 고민하고 있으며 논술·서술형 수능도 하나의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채점의 공정성이다. 정부와 대학이 수긍할 정도로 논술·서술 채점 AI가 고도화된다면 이런 우려를 어느 정도는 줄일 수 있다.
다만 ‘고차방정식’으로 불리는 대입에 활용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가령 챗GPT에 ‘독도는 한국 땅인가, 일본 땅인가’란 질문을 넣으면 “독도는 국제법상 대한민국 영토로 인정되며 울릉군에 속한다”라며 독도 관련 각종 정보를 쏟아낸다. 정확한 것도 있고 부정확한 것도 있었다. 질문을 바꿔 ‘다케시마는 일본 땅인가, 한국 땅인가’라고 묻자 “다케시마는 국제법상 일본 영토로 인정되며 일본의 지리적 범위에 속해 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질문 주체에 따라 완전히 상이한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물으면 ‘대입 경쟁 압력이 지나치게 강하다’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등 솔깃한 답변을 내놓지만,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간 질문을 던지면 유용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챗GPT가 고도화되거나 한층 강력한 AI가 등장하면 어떨까. ‘챗GPT 쇼크’에 구글은 ‘바드(Bard)’란 이름의 AI챗봇을 서둘러 발표했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도 토종 AI챗봇을 준비 중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AI가 어디까지 발전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대응 정책을 고민하기에 이른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