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3·8 전당대회에 출마한 당대표 후보들이 본경선 첫 합동연설회에서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당대표 후보 4인은 13일 제주 퍼시픽호텔에서 열린 전당대회 합동연설회에서 각각 7분간 정견을 발표했다. 김기현 의원은 “정통 보수에 뿌리를 든든히 내리고 있는 김기현이 당대표가 돼야 당이 안정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친윤(친윤석열)계의 지지를 받고 있는 김 의원은 “우리는 대통령과 부부 관계인 것이지 별거하는 관계가 아니다”며 윤 대통령과의 호흡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었던 안철수 의원을 겨냥해 “당 지도부가 대통령을 견제해야 된다고 하면 야당을 해야지 왜 여당을 하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 의원은 ‘당대표 험지 출마론’을 내걸고 총선 압승을 강조했다. 안 의원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제 출마 지역도 전적으로 당에 맡기겠다고 약속했다”며 “당이 원한다면 이곳 제주도 좋다. 수도권 험지보다 어렵더라도 기쁘게 출마하겠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김 의원의 최근 ‘탄핵 발언’을 겨냥해 “당대표 후보가 대통령 탄핵을 언급하는 정신 상태라면 결코 총선에서 이길 수 없다”고 역공을 펼치며 김 의원에게 양자 토론회를 제안했다.
두 의원의 신경전이 과열되면서 이날 연설회 도중 양측 지지자들이 고성을 내며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황교안 후보는 다른 세 후보 모두에게 견제구를 날리면서 자신이 ‘정통 보수’라고 강조했다. 황 후보는 안 의원을 “만드는 당마다 다 망가뜨리는 뻐꾸기”라고 비난했고, ‘친이준석계’ 천하람 후보에 대해서는 “당의 정체성과 차이가 크지 않나”고 말했다. 김 의원에 대해선 KTX 울산역세권 연결도로 관련 의혹을 제기하며 “제대로 해명해야 한다. 만약 잘못되면 우리가 이재명처럼 되는 것”이라고 공세를 폈다.
천 후보는 다른 후보들과 달리 제주 지역 민생 문제에 집중했다. 천 후보는 “제주 지역 도시가스 보급률이 11.3%에 불과하다. 보급률을 전국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보수는 허황된 말로 국민을 속이지 않는다”며 “때로는 조금 인기 없는 정책을 추진하지만 언제나 책임 있는 변화를 사명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황 후보를 제외한 당대표 후보 3인과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오전 제주4·3평화공원을 참배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제주 현장 비대위 회의에서 “4·3사건은 아직도 치유가 필요한 역사적인 상처”라며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고위원 후보인 태영호 의원의 발언이 논란을 빚었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민인 태 의원은 연설회에서 “4·3사건의 장본인인 김일성 정권에 한때 몸담은 사람으로서 유가족분들과 희생자분들에 대해 진심으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빈다”고 말했다. 1947년 3월부터 1954년 9월까지 제주에서 벌어진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4·3사건이 김일성의 지시에 의해 촉발됐다고 표현한 것이다.
이에 제주4·3희생자유족회 등 관련 단체들은 “역사적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유포시키는 등 경거망동을 일삼았다. 4·3을 폭동으로 폄훼해온 극우 논리와 다를 바가 없다”고 비판하면서 태 의원의 사과와 최고위원 후보직 사퇴를 요구했다.
정현수 기자, 제주=박성영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