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 지난 9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각자 양손 가득 짐보따리를 들거나, 유모차에 구호 물품을 가득 싣고 찾아왔다. 인터넷 카페에서 지진 참사가 발생한 튀르키예에 보낼 구호 물품을 모은다는 소식에 도움의 손길을 주고자 모인 이들이었다.
이지혜(35)씨의 유모차에는 아기 대신 성인용과 아동용 패딩, 실내복과 내의 등 겨울옷이 가득 실려있었다. 이씨는 집안에서 튀르키예에 보낼 수 있는 깨끗한 옷들을 찾았다. 피해 지역에서 이씨의 첫째 자녀 또래밖에 안 돼 보이는 어린 소녀가 남동생을 챙기는 모습, 폐허 속에서도 엄마가 갓난아이에게 모유 수유하는 장면을 보면서 그 역시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했다.
그래서 올해 2살, 5살이 된 딸들이 타던 유모차에 옷가지 등을 가득 눌러 담아 가져왔다. 이씨는 “우리 아이들은 당장 패딩이 없어도 살 수 있으니, 우선 집에 있는 깨끗한 패딩은 전부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강진 소식에 응원과 위로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샀던 옷을 기꺼이 나눴고, 여행을 가려고 샀던 침낭과 핫팩 등 방한용품을 나누는 이들도 있다. 온라인에는 기부금을 모을 수 있는 포털사이트와 기부처 정보가 활발하게 공유된다.
당일 주차장에서 1시간 동안 진행한 행사에는 약 40명의 인근 주민들이 참여했다. 아빠 손을 잡고 함께 온 아이도 있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양말이나 옷도 쌓였다. 꾹꾹 눌러 담았음에도 대형 비닐봉투 20개가 금세 가득 찼다. 행사를 기획한 커뮤니티 운영자 김은경(48)씨와 봉사자들은 상의, 하의 등 종류에 따라 옷을 분류해 담았다. 김씨는 12일 “이곳에 오지 않고도 직접 기부물품을 전달하신 분들도 많다”며 “어떻게든 튀르키예를 돕고 싶은 보통 사람들의 마음이 모였다”고 말했다.
김씨와 봉사자들은 모아둔 옷들을 차량 3대를 이용해 옮겨 근처에 있는 사단법인 ‘따뜻한하루’에 전달했다. 박윤미 따뜻한하루 실장은 “현지에 있는 직원들과 협력자들을 통해 1차로 구호물품을 전달했으며, 시민들이 전해주신 물품은 오는 17일 튀르키예로 향하는 직원들이 함께 가져가서 안전하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후원자들이 보내준 손길이 정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여행작가인 40대 정효정씨는 평소 여행을 하며 많이 가지고 있던 야외용품을 모아서 지난 8일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에 보냈다. 판초 우의, 고어텍스 등산화, 오리털 경량재킷, 침낭 등의 방한용품이었다. 그렇게 모은 물건이 약 20㎏ 상당의 상자 2개에 달했다.
정씨는 “가격이 비싸거나 추억이 깃든 물건도 있었지만,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곧장 물건들을 정리해 보냈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단체카톡방 등 사람들이 모인 곳에선 기부처나 기부 방법을 공유하는 글이 공유되고 있다. 적립 포인트 등을 통해 쉽게 기부에 참여할 수도 있다. 기저귀와 방한 장갑 등을 보낸 뒤 그 과정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한 이밝음(34)씨는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방법을 몰라서 못 하는 사람들을 위해 공유했다”며 “전 세계 곳곳에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튀르키예에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