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숙(52) 성남아시아교회 목사가 인터뷰 전 문자로 보낸 명함엔 교회명 대신 ‘㈔아시아인마을’과 ‘부설기관 글로벌이주민자녀학교’란 문구가 큼지막이 박혀 있었다. 명함을 보며 든 의아함은 지난 8일 인터뷰를 위해 경기도 성남의 교회를 방문하고서야 사라졌다. 교회가 있는 상가 건물엔 2개 층에 걸쳐 예배당과 사무실, 교실이 옹기종기 마련돼 있었다. 이날 만난 그는 활짝 웃으며 “교회와 마을, 학교가 한데 어우러지는 걸 오랫동안 꿈꿔왔다”고 했다.
조 목사는 이들 공간에서 아시아 각국의 결혼이주민과 이주노동자, 이주민 자녀와 수시로 만난다. 주로 주말엔 이주민 자녀가, 주중엔 결혼이주민과 이주노동자가 찾아온다. “산업재해와 한국살이 부적응 등 힘든 일로 이곳을 찾았던 이들의 표정이 점점 밝아지는 걸 볼 때 가장 기쁩니다. (우리 3기관은) 연약한 이들이 모여 하나님의 역사를 일궈가는 현장 그 자체입니다.”
‘세상이 안 하는 일’ 하기
한신대 신학대학원 94학번인 조 목사의 학부 전공은 사회복지학이다. 한일장신대에서 총여학생회장을 지낸 그는 사회복지뿐 아니라 한국교회 개혁에도 관심이 많았다. 당시 조 목사가 동참한 교회개혁 운동은 ‘여성 목사 안수 운동’. 신학 전공은 아니었지만 기독교인이라면 응당 교회 개혁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여겼다. 여성 목사 안수 운동에 참여한 이후 그 자신도 목회자가 되기로 마음을 굳힌다. ‘교회가 인적, 물적 자원을 지원해 헌신적으로 섬길 때 지역사회가 변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신대원 졸업 후 경기도 안산의 선양교회에서 전임전도사를 지낸 조 목사는 이곳에서 이주노동자를 처음 접했다. 당시 임금체납과 산재 등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돕던 그는 몇 차례 임지를 옮긴 뒤 2013년 성남으로 되돌아오면서 이주민 사역과 다시 연을 맺었다. 6년간 성남지역 외국인복지센터 등에서 이주민을 돕던 그는 기존 제도에서 도움을 기대하기 힘든 미등록 이주민 등 30여명과 2019년 성남아시아교회를 개척했다. “등록이든 아니든, 주님께서 제게 맡기신 이분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는 목사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하나님 계획대로 사는 게 목사의 삶이고, 교회는 세상이 안 하는 일을 해야 하니까요.”
이주민 문제는 ‘팔각지대’
조 목사는 이주민 지원을 본격 나서기 위해 교회 개척 이듬해에 ‘㈔아시아인마을’을 출범시켰다. 사업은 이주민 상담과 훈련, 긴급의료와 생활 지원 및 이주민 자녀교육 위주로 꾸렸다. 그가 이들 사업을 추진하며 특별히 고려한 건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민이다.
“흔히 결혼이주민이라고 하면 여성을 떠올리고, 이주노동자라고 하면 남성을 떠올리더군요. 하지만 현장에서 보면 결혼이주남성도 있고, 여성 이주노동자도 있어요. 이주민이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라고 하는데 제도의 허점 속에 있는 이주민은 그야말로 ‘사각지대의 사각지대’에 있는 거죠. 그래서 저희는 이들을 일명 사각에 사각을 더한 ‘팔각지대’에 있다고 합니다.”
이주민 자녀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이주민자녀학교도 ‘틈새 교육’을 지향한다. 공교육 사각지대를 메워보자는 시도다. 학교는 방과후학교가 운영되지 않는 주말에만 열린다. 국어 영어 중국어 과학 등 학과목뿐 아니라 요가나 댄스스포츠 전자키보드 드론 축구 등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는 데 힘썼다. 사각지대와 같은 맥락으로 이주민 자녀 중 장애가 있는 형제자매의 심리 상담과 미등록 이주민 영유아 자녀 예방 접종비 지원 등도 제공한다.
이 밖에도 그는 다문화육아공동체 양성, 필리핀 위안부 지원 등 도움의 손길이 적거나 없는 국내외 사업 여러 개를 진행 중이다. 이들 사업을 설명하며 조 목사가 재차 강조한 건 “보조금에 의존하는 이주민을 만들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저를 요술램프의 지니로 아는 분이 종종 있습니다. 본인 권리만 주장하고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 경우죠. 이주민을 동등하게 대하되 권리와 책임을 조화롭게 인식하고 더 나아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주님의 사람으로 세우는 데 중점을 두고 사역에 임하려 합니다.”
‘건강한 여성성’ 살리는 목회자 늘길
국내 이주민 사역자 중 흔치 않은 여성 목회자인 조 목사는 후배 여성 목회자를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무엇보다 ‘건강한 여성성을 살린 목회’를 지향하는 이들이 많이 배출되길 바랐다. 여성 목회의 강점은 관계지향성 등 여성 특유의 성질에서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 특히 어린이와 여성 등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이주민 목회에 있어 돌봄과 공감 능력이 특화된 여성 목회자는 분명 강점이 있다고 했다. “여성의 관계지향성은 일견 나약해 보일 수 있지만, 분란을 화합시키고 상대의 아픔을 넉넉히 품어준다는 데 그 강점이 있습니다. 건강한 여성성을 바탕으로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는 여성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이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성남=양민경 기자, 이현성 인턴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