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내 손이 검은색!’ 무서운 한랭질환… 한파에 무방비

입력 2023-02-10 00:04
지난달 25일 서울시 용산구재활용센터에서 한 노동자가 야외에서 재활용쓰레기를 분류하고 있다. 연합뉴스

올겨울 맹위를 떨친 ‘시베리아 한파’로 동상·동창 등 한랭질환 산재도 잇따라 발생했다. 그런데 폭염과 달리 한파에 대해선 휴식 보장 등 별다른 근무 규정이 없어 겨울철 야외 노동자의 안전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 12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5년간 산업현장 내 한랭질환 피해자 수는 45명이었다. 폭염 산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지만 문제는 한랭질환자 수가 증가 추세라는 점이다. 질병관리청이 집계한 지난겨울(2021년 12월~지난해 2월) 한랭질환자는 300명이었고 그중 9명이 사망했는데, 올겨울(지난해 12월~지난 7일)에는 2개월여간 질환자 399명, 사망자 12명으로 이미 지난해 수치를 훌쩍 넘어섰다.

야외 노동자들이 한파로 목숨을 잃거나 신체 부위를 절단해야 하는 등 위험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서울 강남구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는 50대 남성 A씨는 지난해 1월 동상에 걸려 산업재해를 인정받았다. 연일 영하의 날씨가 이어졌던 당시 A씨는 새벽에 재활용쓰레기 분리수거 작업 중 손이 검게 변하고 감각이 둔해지는 증상을 겪었다. A씨는 괴사성 동상으로 불리는 ‘3도 동상’ 진단을 받았다.

같은 달 전북 완주군 식품공장에서 일하는 70대 B씨도 한랭질환 산재를 당했다. 두부 생산 일을 하던 B씨는 한파에도 난방시설이 없는 공간에서 일했다. 장화를 신은 채 일하던 그는 발가락에 염증반응이 일어나는 동창에 걸려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한파는 폭염과 달리 노동자 휴식을 강제할 근거가 없는 상황이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사업장은 ‘폭염에 노출되는 장소에서 작업해 열사병 등의 질병 발생 우려가 있는 경우’에 적절한 휴식을 제공하도록 돼 있지만 한파에 대해선 별다른 규정이 없다.

고용부의 폭염·한파 근무 가이드라인도 차이가 있다. 폭염의 경우 기온이 33도 이상이면 시간당 10분, 35도 이상이면 시간당 15분 등 구체적인 휴식시간을 제시하고 있다. 오후 2~5시엔 ‘무더위 휴식시간제’를 권고한다. 하지만 한파에 대해서는 ‘한파특보 발령 시 적절하게 휴식하라’는 원론 수준의 권고에 그친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추울 땐 뇌심혈관계·근골격계 질환에 걸리기도 쉬워 집계되지 않는 한파 관련 산재는 더 많을 것”이라며 “어느 정도 기온에선 얼마만큼의 휴식이 필요한지 등에 대한 연구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체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