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상도 전 국회의원의 뇌물 혐의에 대한 1심 무죄 선고로 대장동 비리 사건 수사와 재판을 이어갈 검찰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곽 전 의원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재판장 이준철)는 대장동 일당의 배임 사건도 맡고 있는 데다, 두 사건 공소사실은 모두 ‘정영학 회계사 녹취록’을 주요 근거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곽 전 의원 사건에서 녹취록의 증거능력은 인정하면서도 개별 내용마다 발언의 신빙성을 세세히 따진 끝에 무죄 판단을 내렸다. 검찰 입장에서는 녹취록 발언 및 대장동 사건 관련자 진술에 대한 더 엄격한 사실 증명이라는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곽 전 의원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정영학 녹취록에 대해 “인위적 개작 없이 원본 내용 그대로 복사된 내용”이라며 증거능력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 중 곽 전 의원 공소사실 관련 발언을 추렸다. 사건 관계인들이 발언 하나하나를 두고 첨예하게 맞붙으면서, 재판부 역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곽 전 의원이) 아들 통해 돈 달라고 한다” 등 발언의 증거능력과 신빙성을 다시 따졌다.
대장동 배임 사건 역시 구조가 유사하다. 혐의 내용 상당수가 녹취록 속 발언이나 사건 관계자들의 전언에 기대고 있고, 각 발언의 신빙성을 두고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남욱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법정에서 “천화동인 1호 지분은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실 것”이라고 증언하면서 ‘김씨에게서 들은 내용’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반면 김씨는 “천화동인 1호는 내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곽 전 의원 사건에서 재판부는 “지분 분쟁 중 대장동 동업자들에게 공통 비용을 더 내게 하려고 허언을 했다”는 김씨 진술이 녹취록 속 발언보다 더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곽 전 의원 아들 계좌로 입금했다는 50억원(실수령 25억원) 중 일부라도 곽 전 의원에게 건네진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점 등이 주된 근거였다. 재판부 역시 상식적이지 않은 액수의 성과급이 지급된 점은 인정했지만, 검찰은 이 돈과 곽 전 의원의 연결 고리를 입증할 뚜렷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검찰은 아들 병채씨 계좌에 돈이 입금된 2021년 4월 30일 이후 곽 전 의원과 아들 간 전화통화 횟수가 크게 늘어난 점을 돈 관리 논의 정황으로 제시했지만, 재판부는 “병채씨가 모친의 건강상태에 관해 통화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했다.
이달 초 형사22부 재판장은 유임됐고 향후 대장동 사건 재판도 계속 심리한다. 개별 발언의 신빙성을 입증할 구체적인 물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남은 수사와 공소유지도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서울 지역의 한 판사는 “대장동 사건에서도 재판부가 발언의 신빙성을 엄격하게 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팀은 일방 당사자 진술이나 특정 증거만이 아닌 여러 증거를 종합 검토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이형민 신지호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