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압수수색영장 ‘대면 심리’ 절차를 신설하겠다고 입법예고했다. 수사기관에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하면 판사가 사건 관련자를 불러 직접 물어보고 발부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이 절차가 도입되면 서면 심리인 현 방식과 달리 압수수색 전 심사기일을 정하고 관련자에게 통보해 출석시키게 된다. 전자정보 압수수색의 사생활 침해 소지 때문이라지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범죄 증거를 찾으려 압수하고 수색하는 것인데, 이렇게 한다면 피의자 측에 ‘곧 압수수색이 있을 테니 어서 증거를 인멸하라’고 알려주는 꼴이 되지 않겠나.
압수수색은 범죄 수사의 출발점이다. 그 밀행성과 신속성이 수사 성패를 좌우한다. 기업 범죄와 부정부패 범죄가 갈수록 교묘해져 수사에 더욱 중요한 기본 요소가 됐다. 압수수색영장 대면 심리 제도는 두 가지 모두 심각하게 저해할 우려가 크다. 법원행정처는 “대면 심리 대상은 수사기관이나 제보자 등이 될 예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입법예고한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에는 ‘압수수색 요건 심사에 필요한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만 했다. 피의자나 그 주변인이 ‘관련자’로 불려가 압수수색 계획과 수사 정보를 인지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행정처는 또 “복잡한 사건에 제한적으로 적용될 것”이라고 했는데, 벌써 정치인 기업인 등 유력 인사 영장에 선택적으로 적용되리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추진 과정도 부적절해 보인다. 70여년 지속돼온 압수수색 절차를 바꾸는 일인데도 지난 3일 보도자료조차 내지 않고 홈페이지에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슬그머니 올려놓으며 입법예고했다. 법무부와 검찰은 7일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한다.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도입했던 구속영장 실질심사제와 달리 손쉬운 하위 법령을 택한 점도 의구심을 자아내며 여러 뒷말을 낳고 있다. 여당에선 “야당의 방탄을 위한 청부입법”이란 주장이, 법조계 일각에선 “피고발인 상태로 9월 퇴임하는 김명수 대법원장 방탄용”이란 추측이 나왔다. “판사 출신 전관 변호사들의 일감을 늘려주는 제도”라거나 “사실상 수사를 못하게 하는 법원발 검수완박”이란 시선도 있다.
수사 과정의 인권 보호는 부단히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범죄와 부정부패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도 결코 느슨해져선 안 되는 일이다. 두 가치의 양립을 위한 균형이 필요하다. 하나를 위해 다른 것을 지나치게 훼손하는 제도는 정의로울 수 없다. 대법원의 형사소송규칙 개정은 철회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