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외국인 동일인(총수) 지정 기준을 마련하겠는 의지를 거듭 밝히면서 향후 논의에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통상 규범과의 충돌 가능성 등이 있기 때문에 공정위의 의지와 별개로 추진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공정위는 지난달 말 ‘2023년 주요 업무계획 보고’에서 외국인 동일인 지정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계 외국인이 지배하는 기업집단이 속속 등장하는 가운데 향후 대기업집단 제도와 관련해 불거질 형평성 문제를 대비하자는 취지였다. 9일 공정위의 잠정 조사에 따르면, 배우자나 2·3세가 이중국적자 혹은 외국인인 대기업 수는 10여개로 파악된다.
공정위는 “쿠팡 때문에 추진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관련 논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김범석 쿠팡 의장에게 시선이 쏠린다. 외국인 동일인 이슈가 처음 관심을 받게 된 것도 다름 아닌 김 의장 때문이었다.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롯데 3세), 정몽규 HDC그룹 회장 아내 줄리앤 김(김나영) 등도 영향권 안에 들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제 추진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아 보인다. 일단 세계무역기구(WTO)나 자유무역협정(FTA) 등 통상 규범과의 충돌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미 공정위는 외국인 또는 외국회사가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기업집단(한국지엠·에스오일)에 대해 ‘국내 최상위 회사’를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관행을 형성해 왔다. 그런데 향후 외국 회사나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하거나 변경해 불이익을 주는 것은 통상규범에 반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당장 미국은 구체적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최혜국대우 조항에 위반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집행 실효성 문제도 있다. 동일인이 지정되면 4촌 이내의 혈족 등 동일인 관련자에 대한 자료 제출 의무 규제를 받게 된다. 그런데 이는 외국인에게 적용하기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 황태희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관련 논문에서 “국내회사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나 외국인 동일인의 친족이 2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외국 회사에 대한 공시의무를 인정해야 할지 여부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어떤 경우 외국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할 것인지 기준을 정하는 작업도 쉽지 않다. 현재 외국계 기업집단의 법률상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황 교수는 “외국인이 한국계인지 따지는 등 기준을 세우는 것은 ‘사실상 지배력 행사’라는 동일인의 지정 기준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