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우선주의 미국 상대… 한국 기업 로비 자금 급증

입력 2023-02-10 04:07

지난해 한국 기업들의 대미(對美) 로비 자금이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활동을 강화한 결과로 보인다.

9일 미국 로비 자금을 집계·분석하는 비영리기구 ‘오픈시크릿’에 따르면 삼성SDI는 지난해 처음으로 로비 활동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로비는 합법적인 활동으로 인정되는 만큼 국내 기업뿐 아니라 정부도 적극 활용한다.

삼성SDI의 로비 비용은 총 50만 달러로, 90%가 IRA 법안 내용이 알려진 하반기에 집행됐다. 삼성 전체 계열사 대미 로비 비용인 579만 달러의 10%도 되지 않지만, 전년 대비 증액 비용(207만 달러)의 약 4분 1을 차지한다.

삼성은 IRA 외에도 ‘미국혁신경쟁법(USICA)’ ‘반도체증진법안(FABS Act)’에도 다수 로비 활동을 했다. USICA는 미국 내 반도체 연구 지원 및 생산 보조에 520억 달러를 지원하는 걸 골자로 한다. FABS Act는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기업에 25% 세액공제를 지원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둘 다 미국 반도체산업 육성과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만들어졌다.

현대차그룹도 지난해 가장 많은 수준인 336만 달러를 로비 자금으로 집행했다. 로비 활동은 IRA 대응에 집중된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현대차는 IRA 법안 내용 공개 이후 미 정치권을 상대로 접촉 작업을 대폭 늘렸다. 미 재무부는 리스 차량은 북미에서 생산되지 않아도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했다. 업계에선 현대차의 로비가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본다.

한화그룹 역시 IRA 발표와 맞물려 로비를 대폭 늘렸다. 한화는 지난해 한화솔루션 큐셀 부문에서만 90만 달러를 로비 비용으로 집행했다. 2021년 64만 달러에 비해 40% 넘게 증가했다. 재계 관계자는 “미·중 패권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각국은 점점 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 정책 등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대응 차원으로 로비 활동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