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구원하겠다는 구령의 열정 있으면 ‘200만 전도운동’ 가능”

입력 2023-02-13 03:03
지난 7일 경기도 시흥 신천감리교회에서 만난 김찬호 기독교대한감리회 중부연회 감독. 그는 최근 기감 감독들이 결의한 ‘200만 전도 운동’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이 운동은 5개년 계획 아래 진행될 프로젝트”라며 “교단에서 꾸준히 관심을 갖는다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시흥=신석현 포토그래퍼

지난 2일 오후 3시30분쯤이었다. 서울 용산역 광장엔 이철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 감독회장과 기감 국내 11개 연회 가운데 9개 연회를 각각 이끄는 감독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전순천(은혜교회) 목사의 안내로 현장에 모인 노숙인 50여명 앞에서 찬송을 했고 이들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기감 감독들이 길거리에서 복음을 전한 건 이날이 처음은 아니었다. 지난달 2일엔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시민들에게 핫팩 600개를 나눠주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다. 감독들은 앞으로 매달 초 비슷한 행사를 꾸준히 열기로 했는데, 이런 이벤트를 제안한 주인공은 김찬호(59 은혜교회) 중부연회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왜 감독들에게 노방전도를 제안했던 걸까.

“교회 회복? 구령의 열정이 핵심”

지난 7일 김 감독을 만난 곳은 그가 부흥회 강사로 초청된 경기도 시흥 신천감리교회(최승균 목사)였다. 김 감독은 먼저 기감 감독들이 최근 결의한 ‘200만 전도 운동’에 관한 이야기부터 들려줬다. 감독들의 노방전도 프로젝트는 이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감독들에게 제가 이렇게 말했어요. 코로나19로 교회가 위축된 이때 우리에게 감독 자리를 맡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겠냐고. 그러면서 감독들이 직접 전도에 나서자고 제안했죠. 앞으로 감독과 감리사, 개교회 목회자와 평신도가 하나가 돼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전도에 나설 겁니다.”

200만 전도 운동의 배경엔 갈수록 쪼그라드는 감리교의 교세가 있다. 기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국 감리교회 소속 교인은 120만3824명이다. 2012년 교인 수(158만5503명)와 비교하면 10년 사이에 감리교인의 24%(38만1679명)가 교회에서 이탈했거나 세상을 떠난 셈이다. 향후 10년 이내에 감리교인 규모가 100만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200만 전도 운동이 성공할 수 있을까. 김 감독은 “지도자들이 적극 나선다면 성공할 거란 확신이 있다”고 강조했다.

“저희 교회는 코로나 기간에도 꾸준히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전도에 매진했습니다. 그 결과 팬데믹 상황임에도 60명 정도를 전도할 수 있었어요.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영혼을 구원하겠다는 구령의 열정입니다. 한 명의 영혼이라도 전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섬기는 은혜교회의 부흥 역시 구령의 열정 덕분에 가능했으니까요.”

김 감독이 이끄는 중부연회는 기감의 국내외 12개 연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감리교인 120만여명 가운데 25만여명이 이 연회 소속이다. 그는 “다음세대를 이끌 목회자들에게 지금도 교회 부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것이 내가 감독이 되려고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강화 지역 최초의 감독이 되기까지

김 감독은 목회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목회자였다. 자연스럽게 복음을 접했고 1983년 감리교신학대에 진학했다. 이른바 세습방지법이 없던 시절이어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아버지의 교회를 물려받을 수 있었지만 그는 교회 개척의 길을 택했다. 90년 인천 강화 길상면 동검리에 동검교회를 세운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곳은 무당들이 설치던 지역이었다고 한다.

“동검리 주민들은 집안에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무당을 찾았어요. 그런데 제가 그 무당을 전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무당이 힘을 잃으니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저를 찾기 시작했어요.”

강화읍 한 상가 건물에 은혜교회를 개척한 것은 94년이었다. 당시 교인은 겨우 15명 수준. 김 감독은 그즈음 강화에 있던 사찰들이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포교에 나서는 것에 주목했다. 어렵게 돈을 마련해 어린이집과, 어린이집에 입소한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수영장을 만들었다.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의 이 같은 전략은 교회 부흥의 끌차 역할을 했다.

“어린이집 학부모 중엔 교회에 안 다니는 사람이 훨씬 많았어요.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반발하는 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개의치 않았어요.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꾸준히 예수님의 사랑을 전했더니 어느 순간부터 불신자였던 학부모들이 저희 교회에 등록하더군요.”

은혜교회는 현재 등록 교인이 1200여명에 달하는 강화의 대표 교회로 성장했고, 김 감독은 강화 지역 교회 목회자로는 최초의 감독이 됐다.

김 감독이 은혜교회 성장에만 몰두한 것은 아니다. 그는 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신천지)을 비롯한 이단이 강화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하면 이들이 모이는 곳으로 찾아가 1인 시위를 벌이곤 했다. 동성애 문제 해결에도 앞장섰다. 김 감독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목회자를 상대로 출교 처분까지 가능하도록 만든 이른바 기감의 동성애 반대법을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그는 “감독 선거에 출마하면서 내건 슬로건이 ‘다시 복음 앞에서’였다”며 “내가 그간 이단이나 동성애 문제 등에 강력하게 대응했던 것도 복음의 진정한 가치를 알리겠다는 복음 운동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

시흥=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