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안정된 수입과 여유로운 시간 속 자리 잡은 불안감 공동체와 함께 이겨내고 천국 소망하는 삶 살게 돼

입력 2023-02-13 03:09

누나 둘에 부잣집 장손으로 태어나 남다른 사랑을 받고 자랐다. 아버지는 1년에 딱 이틀, 설날과 추석날에만 쉴 정도로 열정적으로 일하셨다. 집안은 부유했지만 아버지의 절약 정신은 소문이 났다. 일회용 물티슈를 빨아 쓰고 장을 볼 때는 마트 전단을 비교해 싼 물건만 골라 샀다. 손녀딸을 보고 싶어 영상 통화를 할 때는 거실의 불까지 꺼서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전화하셨다. 유일하게 돈을 쓰는 곳은 골프였지만 골프채도 늘 벼룩시장에서 가장 싼 것으로 구입했다.

그렇지만 성실한 대학생을 찾아 장학금을 주는 등 선행도 많이 해 주위의 존경도 받으셨다. 이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나도 절약이 몸에 배었다. 아내가 켜는 전등을 따라다니면서 끄고 아이들 장난감은 대부분 얻거나 중고 카페에서 샀다. 옷을 살 때도 아울렛에서 폭탄세일을 할 때만 샀다. 이런 내게 아버지는 많은 물질의 혜택을 베풀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30평과 40평대 아파트 두 채를 가지게 됐고,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엔 큰 유산도 상속받았다. 당시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어서 그 돈을 기반으로 부동산에 투자해 큰돈을 벌면서 재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아버지 밑에서 함께 일했지만 사업의 장래성이 없을 것 같다는 판단에 후배와 함께 방송 관련 회사를 창업했다. 초기에는 자본금도 많이 들고 어려움도 많았지만 최고의 경영진을 꾸려 1년 만에 임직원 40명이 넘는 그럴듯한 회사로 성장했다. 주로 대형 방송사의 뉴스센터를 운용하는 일로 대기업과 계약으로 20억 정도의 기본 매출로 회사는 잘 돌아갔고 삶도 매우 윤택해졌다. 아침에 임원 회의를 마치면 후배와 같이 두툼한 햄버거를 먹으며 한가로이 최신영화를 관람하고, 회사로 돌아와 몇 가지 서류에 결재하고 일찍 퇴근했다. 업무에서는 주로 비싼 점심을 먹고 평일에도 골프를 치며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평소 꿈꾸어 온 대로 나이 40에 모든 것을 내 뜻대로 결정하고 은퇴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렇게 안정된 수입과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지만 시간이 흐르며 삶의 무료함과 공허함, 그리고 근원을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원하던 삶이 이루어져도 정말 나도 이해할 수 없이 무감각해지고 무기력해지기만 했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기도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내 신앙은 삶과 반대로 뿌연 안개와 같았다.

그런 어느 날 아내가 아이들과 한마음 겨울수련회에 간다고 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나도 갈까’ 하는 생각으로 처음 수련회에 따라갔다. 이왕 참가하는데 제대로 한번 부딪쳐 보자는 생각으로 노트 필기를 하며 3박 4일간 집중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 기도 시간에 한 말씀이 가슴을 때렸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한 고백이었다. 순간, 교회의 수많은 간증자들의 놀라운 삶들이 생각났다. ‘어떻게 저런 어려움 속에 변화되어 부활의 증인들이 될 수 있었을까. 그런데 내 삶은?’ 이런 의문을 지닌 채 수련회를 마쳤다.

그런데 얼마 후 회사에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고 우리의 기술과 인력까지 흡수한 것이다. 정상적인 M&A가 아니어서 기술과 인력에 대한 보상도 받지 못한 채 회사는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아내는 이런 절박한 상황에도 조금도 요동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엎드리고 돌아오기를 원하신다고, 어려움을 통해 기회를 주셨다고 했다. 나는 수긍할 수 없었지만 변명의 여지는 없었다. 내 삶이 주님께서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친한 형이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상에선 최고로 성공한 삶을 살던 형이 무너지는 것에 비하면 내 문제는 오히려 작았다. 형과 함께 교회로 달려가 기도하며 교회 형제들과 말씀 교제를 했다. 그런데 형 옆에서 듣고 있던 내 마음이 더 뜨거워졌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과 성경의 모든 말씀이 선명하게 비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온 마음을 덮으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터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그 복음의 능력은 참으로 강력했다. 예수를 믿는다고 했지만 사실상 내가 주인이었던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었다. 맑은 물속이 들여다보이는 것과 같이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이 선명했다. ‘나 혼자’ 성향이 강했던 내가 날마다 예수님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공동체로 이어졌다.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하는 천국을 경험하니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 하늘나라의 확장이라는 사실이 보였다. 부활의 복음을 만나고 공동체가 열렸다. 이제는 날마다 하나님의 꿈인 교회 공동체가 세상을 덮을 것이 소망이 된다.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니 나도 일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젊은 나이에 은퇴가 아니라 죽을 때까지 하늘에 상을 쌓는 일만 하리라는 다짐이 저절로 나왔다. 보이는 세상 것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새 삶을 살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승범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