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밖에 모르고 고집도 센 나와 자상한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외동딸로 곱게 자란 아내가 처음 만난 것은 대학 4학년 때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고민할 때인데도 학교 후배이자 교회 동생이었던 아내에게 마음이 쏠렸고 점점 가까워졌다.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도 하고 놀이공원에도 가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마냥 좋을 것만 같았던 사이에 조금씩 틈이 생기며 다툼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 급히 만나자고 해서 나갔는데 머리를 쇼트커트로 싹둑 자르고 나왔다. 나는 평소 긴 생머리를 좋아해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니 그것이 이유가 되어 한바탕 싸움이 시작됐다. 또 친구 결혼식에 가려고 만났을 땐 전쟁에 나가는 여전사처럼 워커까지 신고 나와 싸웠고, 식당에 가서 찌개가 정말 맛있다고 하자 자기한테는 애정표현 한 번도 안 해주면서 어떻게 김치찌개에는 할 수 있느냐고 해서 또 살벌하게 싸웠다. 수시로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고민이 깊어갔다. 내가 취업을 못 한 것이 싸움의 원인이란 결론에 머리를 빡빡 밀고 합격할 때까지 만나지 말자 얘기하고 지방에 내려가 공무원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얼마 후 아무 연락도 없이 찾아와 무척 반가웠지만 매몰차게 돌려보냈다. 그런 노력에도 시험에 계속 실패했고 결국 공부를 접고 어느 교육 회사에 취업했다. 하지만 싸움은 여전했다. 언젠가 약속한 좁은 골목길에 갔는데 한참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앞뒤에서 차가 빵빵거려 진땀을 빼는데 뒤늦게 나타나 차에 타더니 잔뜩 화가 나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반갑게 맞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너무 기가 막혀 “네가 잘못 했잖아!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했지만 결과는 30분이 넘는 싸움이었다. 시간과 장소와 관계없이 이런 싸움은 계속되었고, 밤에도 전화로 두 시간 이상 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싸웠다. 그러면서도 서로 내가 아니면 누가 만나줄까 하는 생각에 쿨하게 헤어지지도 못했다.
이렇게 쌈닭 커플이던 우리는 둘 다 모태신앙이었다. 대학 때 같은 기독교 동아리에서 예배를 드리며 성경공부와 기도 모임도 같이 했다. 다시 싸우지 않으리라 다짐을 해도 작심삼일이었고, 마침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며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둘 사이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마지막 추억을 찾아 함께 다닌 대학교에 가던 중, 우연히 대학 동아리 후배를 만났다. 잠깐 얘기를 듣던 후배가 ‘오빠! 뭐가 문제에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하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후배의 확신에 가득 찬 모습에 놀라 나는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한마음교회 수련회에 참가했다.
예배가 시작되고 찬양을 부르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을 하나님께 고백하는데 사도행전 17장의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다”는 말씀이 귀에 크게 들렸다. 특히 ‘증거’라는 단어가 돋보기로 보듯 크고 선명하게 보였다. ‘아니, 부활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라고?’ 놀란 내게 어느 형님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예수님만 부활하셨고 그것은 수천 년 전부터 예언되어 있었다”고 했다. 유일한 부활이라는 말이 새롭게 들렸다.
삶 전체를 걸고 따라다닌 제자들이 자신의 죽음이 두려워 도망갔지만 결국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의 부활을 증언했던 사실 앞에 내 모든 것이 무너졌다. ‘예수님이 진짜 부활하셨구나! 부활은 진짜구나!’ 결론이 딱 내려질 때 형님은 예수님이 왜 부활하셨는지 아느냐고 했다. 또 말문이 막혔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는 구절을 보여 주며 부활하신 이유를 말해주었다. ‘아! 예수님이 인생의 주인이셨구나!’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딱 서니 내 생각, 내 감정, 내 기준대로 살아온 죄가 선명히 보였다. 그 죄를 회개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주인으로 고백했다.
전능자 하나님이 주인이 되니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이 분명히 보였다. 사랑의 개념도 완전히 달라졌다. 여자 친구에게 “내가 6년 동안 널 많이 힘들게 했어. 이제 예수님처럼 내 목숨 바쳐 너를 사랑할게. 나랑 결혼해 줄래?” 친구도 예수님이 주인인 남자가 최고라며 기뻐했고 공동체의 축복 속에 결혼했다. 주님의 사랑은 가정의 모든 문제를 덮었다. 우리 집을 예배처로 오픈하고 아내는 맛있는 음식을 장만해 지체들을 섬겼다. 어머니가 조금만 늦게 따라와도 기차를 혼자 타고 갈 정도로 고지식한 아버지가 가장 먼저 복음으로 변화돼 어머니께 애정 표현을 하는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났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는 사이에 나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지금 아내의 태중에는 셋째 아이가 자라고 있다. 각자 주인 되어 만나면 피 터지게 싸우던 우리를 예수님만 섬기는 잉꼬부부로 바꿔주시고, 자녀의 축복까지 누리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다. 이제는 오직 우리 가정의 머리이신 주님 말씀에만 순종하며 믿는 가정의 모델이 되어 많은 영혼이 예수님께 돌아오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오늘도 소망한다.
박재석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