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십계명 받은 곳엔 베두인의 전승이 숨 쉰다

입력 2023-02-11 03:00
그래픽=신민식

지난 3일(현지시간) 이집트 시나이반도 시내산(현지명 제벨 무사) 동쪽 누에바 가는 길. 왕복 2차선 아스팔트 도로 양쪽으로 황량한 광야가 끝없이 펼쳐졌다. 흰색에 가까운 모래 한가운데 우뚝 솟은 기이한 형태의 바위산들은 태곳적 신비를 자아냈다. 오랜 세월 풍화작용으로 형성된 바위들의 모양새는 마치 누군가 제작한 설계 도면 그대로 조각해놓은 듯했다.

시내산에서 동부 누에바 방향으로 끝없이 펼쳐진 광야 모습.

이렇게 신비한 바위산 근처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사막 베두인들이 마침 이곳을 통과하는 한국인 성지순례객을 위해 점심을 만드는 중이었다. 베두인 사람들은 아랍 남성의 필수품인 쉬마그를 머리에 쓴 채 작열하는 태양 속에서 능숙한 솜씨로 불을 피워 점심을 준비했다. 점심은 아랍식 빵 ‘피타’의 베두인식 이름인 ‘프띠프’였다. 베두인 남성은 모래바닥에 카펫을 깔고 그 위에서 모든 요리를 했다. 얇게 구워진 프띠프에 소스를 찍어 먹는 맛은 일품이었다. 음료는 아랍 티인 ‘차이’. 베두인들은 찻주전자에 차를 끓여냈고 유리잔에 담아 한 잔씩 돌렸다. 손님을 환영한다는 의미의 ‘웰컴 티’였다.

시나이반도 사막 베두인족이 그들의 주식인 프띠프 빵을 굽고 있다.

베두인, 그들은 누구인가

아라비아반도 및 중동 지역에서 씨족사회를 형성하며 유목 생활을 하는 베두인. 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2000만명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랍어로는 ‘사막의 거주민’이라는 의미의 ‘바다위’(badawiyy) 또는 ‘바다위윤’(badawiyun)이라 부른다. 베두인이라는 말은 ‘바다위윤’에서 왔다.

베두인은 일반적으로 아랍인과 동일한 민족으로 보고 있지만 아랍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베두인은 아랍인 중 유목하는 씨족민들을 일컫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두인은 자신들은 어느 국가에도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베두인은 역사적으로 국가 없는 시기 속에서 오래 살아왔다. 몇몇 씨족은 왕국을 세우기도 했지만 모두 무너졌다. 베두인은 아라비아반도를 비롯해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등지에 흩어져 무리를 이루고 있다.

아직도 많은 베두인은 과거 삶의 방식을 고수하는 편이다. 씨족 중심의 사회를 이루고 족장을 선발하며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이집트 시내산 근처 베두인은 결혼할 때 바위에 신발을 그려놓으면 부모들이 이를 보고 배필을 결정한다. 이들은 자신의 조상이 베두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6~7대 조부 이름까지 외운다. 외부인이 찾아오면 반드시 차 한 잔을 대접하며 3일은 무조건 보호한다는 규칙이 존재한다.

시내산 입구에서 만난 베두인 남성들이 낙타를 탄 모습.

최근엔 유목 대신 정착 생활을 하는 베두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전부터 상인이 되어 중개무역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농사나 목축을 하면서 정주민들과 어울려 살기도 했다. 어업에도 종사해 어부로 사는 베두인들도 있다 한다. 관광지 등에선 여행객을 위한 가이드에 나서고 기념품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또 자체 숙박업소를 운영하거나 낙타, 지프 투어 사업도 벌인다. 한 통계에 따르면 유목 생활을 하는 베두인들은 전체 인구의 5%에 불과하다고 한다. 특히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의 사막화가 빨라지면서 유목 생활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성경의 이야기를 간직한 베두인도 있다

무엇보다 베두인들에겐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傳承·tradition)가 있다는 특성이 있다. 전승은 문화 풍속 제도 따위를 이어받아 계승하는 일이다. 그 내용이 신화나 전설보다 신빙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대표적 전승이 이집트 시나이반도의 시내산 위치이다. 현재 제벨 무사라 불리는 이 산이 바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산으로 추정되기까지는 베두인 전승이 큰 역할을 했다.

서울장신대 강후구(성서고고학) 교수는 “3400여년 전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유목 생활을 했기에 지금까지 고고학적 유적이 남아있을 수는 없다”며 “다만 전 세계 기독교가 시내산 위치를 제벨 무사로 추정하는 근거엔 현지 전승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집트 베두인은 누구일까. 이들은 이집트 내 34개 소수민족 중 하나로 분류된다. 인구는 120만명 정도로 추산하며 마르사 마트루흐를 중심으로 한 북서부, 바할리야 오아시스 지역의 남서부, 마르싸알람 지역의 동남부, 그리고 시나이반도 지역 등 4개 지역에 분포해있다. 시나이반도는 다시 남부 13개, 북부 7개 지역에 베두인 부족이 산다.

이 중 시내산 지역 베두인은 ‘자발레이아’로 불린다. 이들은 시내산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간다. 자발레이아는 여타 이집트 베두인과 다른 민족적 특성이 있다. 바로 루마니아계 베두인이라는 사실이다. 6세기 동로마제국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가 루마니아 군인 200명을 시내산으로 급파했다. 파병 장소는 현 시내산 입구에 위치한 성 캐서린수도원이다. 황제는 당시 수도원을 확장하고 두터운 방벽을 세워 수도원을 보호하면서 군인들을 보내 지키게 했다. 200명 군인은 이렇게 시내산 주변에 머물렀고 현지 베두인 여인들과 결혼하면서 10세기까지 수도원을 지켰다고 전해진다. 적어도 500년간 기독교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이집트 시나이반도 시내산 주변에 살고 있는 자발레이아 베두인 파라지 마하무드씨. 그는 자신의 조상이 루마니아계 기독교인이라고 말했다.

지난 5일 현지에서 만난 자발레이아 일원인 파라지 마하무드(54)씨는 “우리 조상들은 과거엔 기독교인들도 많았고 기독교 전승도 간직했다”며 “자발레이아 사람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다”고 했다.

마하무드씨는 “우리는 조상 때부터 출애굽 이야기를 전해왔다. 시내산 입구에 아론이 서 있었다는 장소, 금송아지를 만든 곳, 이드로 계곡, 불타는 떨기나무, 70인의 장로들이 머물렀던 장소, 그리고 모세의 돌이라 불리는 전승들”이라고 말했다.

자발레이아 베두인과 성 캐서린수도원의 관계는 지금도 긴밀하다. 마하무드씨는 “몇몇 자발레이아 베두인이 수도원에 소속돼 일하고 있다. 또 수도사(그리스정교회)에 의해 발탁된 자발레이아 청소년은 대학에 진학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마하무드씨에 따르면 이들 인구는 현재 5053명이라고 한다.

베두인, 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질까

절대다수의 베두인들은 이슬람권에 속한 무슬림들이다. 하지만 꾸란 속 성경 인물인 아브라함이나 모세, 예수님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자발레이아 베두인은 기독교 전승까지 공유한다는 점에서 기독교와 소통할 수 있는 접촉점이 더 많다.

세계 선교계에 따르면 그동안 자발레이아 베두인을 위한 선교사는 전무했다. 다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는 미국 남침례회에서 파송 받은 베두인을 위한 선교사가 활동 중이다. 요르단에도 미국 남침례회 소속 베두인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다. 중동 전역에서 베두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는 지난 2000년까지 총 17명이었다.

국제예수전도단은 베두인이 처한 어려움을 이렇게 밝힌다. “대부분 베두인의 실업률은 매우 높으며 소수가 고등학교 졸업장을(4%) 가지고 있고, 더 적은 사람들이(0.6%) 대학을 졸업한다. 이스라엘 네게브 지역 베두인 인구는 11만명이 넘어도 여전히 물리적, 사회적, 영적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베두인들에게 복음은 거의 닿지 않는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이다.”

시나이반도(이집트)=글·사진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