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의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ESG) 무역장벽’이 가파르게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 기업의 절반가량은 속수무책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소기업은 정보·예산 부족 등으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유럽연합(EU)은 인권·환경보호 강화를 위해 ‘기업의 지속가능성 실사 지침(CSDD·corporate sustainability due diligence)’을 준비하고 있다. 지침이 발효하면 기업들은 인권·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예방, 문제 발생 시 구제 의무를 떠안는다. 관건은 EU 회원국뿐만 아니라 제3국의 기업도 적용을 받는다는 데 있다. 법무법인 광장의 ESG팀장을 맡고 있는 설동근 변호사는 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EU로 수출하는 한국 기업에 인권·환경 문제가 발생할 경우 제재, 분쟁이 있을 수 있고 ESG 개선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독일 자동차회사 BMW는 자체적으로 거래처 3220곳의 ESG 경영 수준을 평가하고, 기준에 미달한 108곳을 거래선에서 뺐다. 미국 전자회사 GE도 협력업체 1286곳의 ESG를 평가한 뒤, 71개사와 거래를 아예 끊었다. 2020년 각 기업의 지속가능성 보고서에 나온 내용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ESG 장벽’은 태풍을 예고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아직 한국에서는 BMW, GE의 거래선에서 배제된 협력업체들 같은 상황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ESG가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환경·인권 관련 ESG 경영을 안착시키지 못한 기업의 경우 수출 길이 막힐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상황은 심각해지는데, 한국 기업들의 대응은 더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2023년 ESG 주요 현안과 정책과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0.3%는 올해 가장 큰 ESG 현안으로 ‘EU의 공급망 ESG 실사 대응’을 지목했다. 공급망 실사법에 대한 단기적 대응이 있느냐는 질문에 원청기업은 48.2%, 협력업체는 47.0%가 ‘별다른 대응 조치가 없다’고 했다.
중소기업 사정은 더 나쁘다. 경남의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솔직히 환경·노동 문제 대비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중소기업들은 ESG 경영에서 가장 어려운 점으로 ‘ESG 도입 및 실천 관련 정보 부족’(36.5%)과 ‘제한된 예산’(32.2%)을 꼽는다. 대한상의 윤철민 ESG경영실장은 “정부가 업종별 ESG 가이드라인 제공하고 감세·공제 등의 세제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