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금융지주사 이사회 운영 실태 조사에 착수한다.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금융지주에서 회장이 이사회를 장악한 뒤 ‘셀프 연임’을 해가며 왕좌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관행을 끊고 견제·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금감원은 은행 보험사 증권사 저축은행 등 업권별로 챙기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현황을 사업장별로 직접 관리키로 했다. 공정률과 분양률을 따져 공사가 멈추거나 분양에 실패하는 등 문제 사업장을 선제 대응해 건설사와 증권사가 부도에 이르는 일을 미리 막으려는 조치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6일 기자 간담회를 열고 2023년 업무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금감원의 가장 큰 목표는 책임 경영 문화 조성이다. 은행권이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하려면 지배구조 합리화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 원장은 “해외 감독기구를 보면 금융사 최고경영자를 포함해 내부 인사 시 역량과 적정성에 대한 검토를 꽤 깊이 있게 한다”면서 “국내 금융지주 이사회가 회장 후보를 정하거나 각종 안건을 처리하는 절차가 잘 흘러가고 있는지를 고민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진 성과 보수 체계도 주된 점검 대상이다. 금융당국은 정부로부터 사업권을 받아 과점 형태로 운영되며 예금과 대출 간 금리 차로 수익을 내는 은행이 성과급을 뿌리며 돈 잔치를 벌이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또 금감원은 은행계 금융지주가 계열사를 동원해 대규모 부동산 PF나 해외 오피스 빌딩 등에 공동 투자하는 경우 위험 관리를 제대로 하는지 여부를 점검키로 했다. 횡령 등 금융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내부 통제를 강화하고 금융 사고 발생 시 즉시 현장 점검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금융권 전반의 위험 통제도 강해진다. 금감원은 우선 PF는 대주단(대출 금융사 단체)이 부실 사업장을 자율적으로 정상화할 수 있도록 협약 개정을 지원한다. PF 채무 보증이 잦은 증권사는 실질 위험 요인을 파악하기 위해 기초 자산별, 유형별 현황을 심층 분석한다.
보험사는 부동산 등 대체 투자 전반의 위험 관리 체계와 건전성 관리 현황을 점검하고 충당금을 제대로 적립하고 있는지 내부 통제 체계 작동 여부도 함께 챙긴다. 저축은행이나 캐피털사는 경기 침체가 심해질 때를 대비해 다중 채무자 여신 등 취약 부문의 충당금 적립률을 상향한다.
금감원은 공매도 감독 강화 등 자본시장 공정화 대책도 마련했다. 기관이나 외국인 투자자의 ‘90일 경과 장기 주식 대차 감시 시스템’을 구축해 현황을 살핀다. 총수익스와프(TRS) 등 공매도 포지션과 연계한 시세 조종 행위에 대한 기획 조사는 확대하고 악성 루머를 유포하는 불공정 거래 세력도 집중적으로 단속한다. 고금리 시기 빚 갚기 어려운 한계 기업이 전환사채(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악용한 무자본 인수·합병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중점적으로 모니터링한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