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정찰풍선

입력 2023-02-06 04:10

1947년 7월 2일,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웰 인근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체가 추락했다. 당국의 모호한 해명과 일부 주민의 외계인 사체 발견 주장으로 로스웰 사건은 역대 가장 유명한 UFO 음모론으로 회자됐다. 1994년 미 공군은 보고서를 내고 로스웰 추락 물체는 외계인이 타고 온 비행접시가 아닌 ‘정찰풍선’이라고 밝혔다. 당시 미국은 소련의 원자폭탄 제조를 감시하기 위해 관측 장비를 풍선에 띄워 보내는 비밀 작전 ‘모굴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었는데 사고로 기기 잔해가 로스웰에 떨어졌다는 것이다. 냉전 시대 치열한 첩보전이 UFO 소동을 일으킨 셈이다.

풍선이 처음 군사적 정찰기기로 쓰인 것은 1794년 6월 프랑스가 오스트리아와 네덜란드 등 동맹군과 맞선 플뢰뤼스 전투에서였다. 개전 초 밀렸던 프랑스군은 적의 움직임을 파악한 정찰풍선 덕으로 승기를 잡았다. 이를 사용한 에어로스타틱 군단은 최초의 프랑스 공군이었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0년대엔 북부 연합군 병사들이 열기구를 타고 남부 동맹 활동 정보를 수집하기도 했다. 냉전 시대가 전성기였다. 모굴 프로젝트 외에도 스카이훅, 모비딕, 제네트릭스 프로젝트 등 정찰풍선을 이용한 소련 핵 감시 작전이 지속적으로 전개됐다. 미 정찰풍선이 소련과 중국에 걸친 280만㎢ 이상의 영토에서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정찰 위성, 무인 항공기 등 첨단 기기 등장으로 사장된 듯 했던 정찰풍선이 최근 뜻하지 않게 화제다. 중국의 정찰풍선이 지난 3일 미국 몬태나주 상공에서 포착되며 미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 취소(4일), 전투기 미사일로 격추(5일) 등 풍선 파동이 주말 새 숨가쁘게 이어졌다. 중국이 풍선을 띄운 목적이 무엇인지, 어떻게 미 본토까지 유유히 오게 됐는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냉전 시대 활약한 정찰풍선이 신냉전으로 불리는 요즘 다시 관심거리가 된 게 의미심장하다. 그만큼 세계가 위험해졌다는 뜻 아닐까. 풍선 하나가 안보와 평화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