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부실 판매 제재 재추진… 금융지주 회장 퇴진 압박 카드?

입력 2023-02-03 04:07
연합뉴스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제재’라는 칼을 다시 빼 들고, 검찰도 관련 수사에 착수하면서 과거 금융권을 들썩이게 했던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사태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특히 검찰과 금융당국의 이런 움직임은 최근 금융지주 회장들의 연임을 포기하게 한 압박 카드로 작용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기회에 사모펀드 사태 리스크를 깨끗이 떨쳐버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제재와 조사 대상에 오르내리는 금융사와 해당 최고경영자(CEO)들의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재부각되는 사모펀드 사태

사모펀드 부실 판매와 관련한 금융당국의 제재 절차는 속도를 내고 있다. 2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와 관련해 그동안 잠정 보류됐던 옵티머스, 라임, 디스커버리 펀드 등과 관련한 제재 안건들의 금융위원회 심의가 이달 말부터 재개될 예정이다. 심의 중단이 결정된 지 약 9개월 만이다.

검찰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수단(합수단)은 지난달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로부터 옵티머스 사태 관련 수사 자료를 넘겨받아 검토에 들어갔다. 합수단은 라임 및 디스커버리 펀드 사건도 다시 들여다볼 것으로 알려졌다.

옵티머스 사태는 옵티머스자산운용이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투자한다며 투자자 약 3200명으로부터 투자금 1조3500억원을 모은 뒤 실제로는 부실기업 채권 인수 또는 펀드를 돌려막는 데 투자금을 써 막대한 손실을 입힌 사건이다. 이 여파로 2020년 6월 이후 환매가 중단되면서 900여명이 5000억원 이상의 피해를 봤다.

라임 사태는 사모펀드 사건 중 역대 최대 규모 피해를 일으켰다. 라임자산운용은 2017년 5월부터 펀드 투자금과 총수익스와프(TRS) 대출자금을 활용해 인터내셔널 인베스트먼트그룹(IIG)펀드 등 5개 해외무역금융 펀드에 투자하다가 부실이 발생했다. 이후 2019년 7월 부실 관리 의혹이 불거지면서 라임자산운용이 운용하던 펀드에 들어있던 주식 가격이 폭락했다. 이에 펀드 173개가 상환 또는 환매 연기되면서 4000명 이상이 1조5400억원의 피해를 봤다. 이외에도 2019년 환매가 중단된 독일 헤리티지 펀드, 디스커버리 펀드에서 각각 4800억원, 2600억원의 피해액이 발생했다.


일련의 사태가 이어지자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는 피해 구제 관련 조치를 마련했다. 분조위는 2020~2021년 옵티머스와 라임 펀드에 대해 ‘착오에 의한 계약 취소’ 결정을 내리며 판매사에 투자금을 100% 반환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관련 금융사 및 임원에 대한 징계와 법적 조치는 지지부진했다. 현안이 산적해 각종 절차가 미뤄진 데다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도 펼쳐졌기 때문이다.

2021년 8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제기한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관련 징계 취소 소송에서 재판부는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내부통제기준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사유로 중징계를 받은 펀드 판매사 CEO에 대한 제재 절차는 지난해 3월 이후 중단됐다. 게다가 지난해 7월 항소심과 12월 최종심에서도 손 회장이 승소하면서 당국의 제재 확정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이어졌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DLF 사태 관련 징계취소 소송을 제기한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지난해 3월 1심에서 패소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금융당국은 재판 결과를 근거로 관련 금융사 및 임원에 대한 조치에 재시동을 걸고 있다.

금융지주 회장 용퇴 명분, 앞으로는?

사모펀드 사태는 금융지주 CEO에 대한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당국과 소송전을 벌인 손 회장의 연임 행보를 두고 금융당국은 노골적으로 사퇴를 압박했다. 회장 선출 레이스가 닻을 올리기 전인 지난해 11월 금융위는 라임 사태 관련해 갑작스럽게 손 회장에 대한 문책경고 징계를 확정했다.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가 확정되면 관련법에 따라 3~5년 동안 금융회사에 취업할 수 없다. 업계에선 1년6개월 동안 미루다가 갑자기 징계를 내린 건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결국 손 회장은 지난달 18일 연임을 포기했다.

3연임이 유력하던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도 지난해 12월 8일 돌연 용퇴를 선언했다. 그는 라임 사태 관련해 금감원으로부터 ‘주의’ 처분을 받아 중징계를 면했음에도 용퇴 이유로 이를 거론했다. 조 회장은 “(라임 사태로) 많은 고객들이 피해를 봤고, 임직원들이 징계 처분을 받기도 했다”며 “누군가는 총괄적으로 책임을 지고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향후 제재가 유력한 다른 금융사 CEO들의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앞서 금감원은 2020년 11월 라임펀드 사태 관련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박정림 KB증권 대표이사와 양홍석 대신증권 사장(현 부회장)에 대한 문책 경고 제재 조치안을 결정했다. 이듬해 3월엔 옵티머스 펀드 판매 관련해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에게 문책 경고 중징계를 내렸다. 금융위는 향후 이를 바탕으로 제재 심의를 진행, 확정할 예정이다.

일련의 움직임에 윤석열정부가 출범하면서 지난 정부 때 이뤄진 사모펀드 사태의 책임론을 부각시킬 것이란 관측이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5월 취임사에서 합수단 부활을 예고했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취임 직후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와 관련해 시스템을 통해 다시 볼 여지가 있는지 점검해보겠다고 밝혔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