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에 혹한이 몰아치면서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이 얼어붙었다. 단, TSMC와 AMD는 예외다. 파운드리와 데이터센터 수요는 메모리 반도체보다 상대적으로 꾸준했던 덕분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 편중’을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에 시장 기대치를 충족하는 ‘성적표’를 받은 곳은 TSMC와 AMD였다. TSMC는 지난해 4분기에 매출 6225억 대만달러, 영업이익 3250억 대만달러를 거뒀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42.8%, 77.8% 늘었다. 4분기 영업이익률은 50.2%로 1년 전보다 10.3% 포인트나 뛰었다.
‘반도체 빙하기’에도 TSMC가 좋은 실적을 낸 것은 고부가가치 반도체 생산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4분기에 주요 고객사의 주문 감소로 매출은 전 분기보다 감소했다. 다만 애플, 퀄컴, 엔비디아 등에 공급하는 첨단 반도체를 TSMC에서 대부분 만들다 보니 이익을 견고하게 유지했다.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을 양분하는 인텔과 AMD는 최근 급부상한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희비가 갈렸다. AMD는 지난해 4분기에 매출 56억 달러, 조정순익으로 주당 69센트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억4900만 달러 적자였다. AMD도 반도체 불황을 피해가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시장 예상을 소폭 웃도는 성과를 올렸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PC부문 매출은 1년 전보다 51% 줄어든 반면 데이터센터는 42% 증가했다. 인텔의 새로운 서버용 CPU ‘사파이어 래피즈’ 출시가 지연되는 사이 AMD가 점유율을 끌어올린 게 실적에 기여한 것으로 해석된다. 시장에서는 올해 AMD가 인텔의 점유율을 빼앗아오면서 ‘좋은 성적’을 올릴 것으로 관측한다.
이와 달리 인텔은 PC, 서버 등 대부분 부문에서 전년 대비로 실적이 하락했다. 4분기 매출은 140억 달러였고, 영업이익은 7억 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실적 부진의 여파로 인텔은 팻 겔싱어 최고경영자(CEO)의 기본급을 25% 삭감했다. 임원의 기본급도 15%, 선임 간부는 10%, 중간 간부는 5% 깎기로 했다.
인텔에 그나마 위안거리는 파운드리 사업이다. 파운드리는 4분기에 매출 3억1900만 달러를 거둬 전년 동기 대비 30% 성장했다. 지난해 전체 매출은 8억9500만 달러로 14% 늘었다. 자회사 모빌아이를 제외하면 인텔 사업부 중 성장이 가장 가팔랐다.
지난해 4분기에 영업이익이 97%나 줄어든 삼성전자도 파운드리 사업에서는 선방했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의 경우 첨단공정 중심으로 생산 능력을 확대하고 고객처를 다변화해 전년 대비 이익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가 반도체 시황에 따른 실적 진폭을 줄이기 위해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 등을 키워야 한다는 진단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직접 반도체를 설계해서 제작을 맡기는 경우가 늘고 있어 파운드리와 시스템 반도체 수요는 시황에 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