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나만 알던 독불장군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 공동체와 지체 섬기며 살아

입력 2023-02-06 03:09

환경이나 상황과 관계없이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며 살았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옳고 그름이 분명하고, 대답도 늘 ‘네, 아니오.’의 단답형으로 군기반장이란 말을 들었다. 누가 실없는 농담을 하면 정색을 하며 ‘지금 장난해?’ 했고, 말이 길어지면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며 거침없이 다그쳤다. 내가 대기업에 다닌다고 부모님은 늘 자랑했지만, 답답한 공간을 견딜 수 없어 부모님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어학연수라는 미명으로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문화 속의 생활은 날마다 환상이었다. 그래도 한인교회에 출석하며 새벽기도, 청년부 활동, 단기선교, 유학생 선교를 위한 ‘코스타’ 집회까지 참가하며 유명한 목사님들과 자주 만나 뜨거운 신앙생활도 이어갔다. 그러다 비자 만료가 되어 어쩔 수 없이 귀국을 했다. 뜨거웠던 신앙생활도 시들해지고 답답해 견딜 수 없었다. 높은 곳에서 번지 점프 하듯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 ‘왜 내겐 큰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또는 ‘이 핸들을 조금만 꺾으면, 내 인생 끝나겠지?’ 라는 불길한 상상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날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대학선배가 미국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의에 하나님이 주신 기회라며 바로 미국으로 떠났다. 뉴저지에서 뉴욕, 맨해튼, 퀸즈, 그리고 많은 도시들에 출장 다니고 주말엔 골프와 가든파티를 즐기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자유분방한 삶도 시간이 흐르며 다시 시들해지고 마음은 끝없이 추락했다. 회사와 계약 연장도 포기하고 귀국하여 멍한 시간을 보낼 때 캐나다에서 알게 된 오빠가 잠시 귀국해 만났다. 그리고 오빠를 따라 한마음교회 작은교회 예배에 따라나섰다.

첫 예배부터 일 년에 딱 한번 듣던 예수님의 부활을 각종 자료를 통해 ‘예수는 역사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다.’며 반복적으로 전하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예수님은 당연히 하나님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 예수가 실존 인물로 B.C와 A.D의 기준이 되고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 승천하셨다는 것을 세계 인물사전, 세계사 교과서를 통해 확인하는 순간,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부활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 예수님을 미쳤다고 한 동생 야고보,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죽인 사울, 모두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후에야 성경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고 부활을 전하다가 순교한 것을 확인한 순간,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사실에 더 이상의 설명이나 증거가 필요 없었다.

그때 하나님께선 부활을 통해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라는 사실과 그 주인을 버리고 내가 왕이 되어 살아온 죄가 바로 지옥 갈 죄임을 선명히 비춰주셨다. 나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독생자를 내어주신 그 사랑을 무시하고 멋대로 살아 왔는데도 그 죄를 책망치 않으시고 회개하고 돌아와 함께 하자고 하시는 주님을 내 마음의 영원한 주인으로 맞아 들였다.

보이는 환경과 상황은 여전했지만 정확하게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았다. ‘이제는 내가 주인 되어 살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으로 그날부터 내가 만난 예수님을 알리는 일에 모든 시간과 돈을 쏟아부었다. 가족들은 눈만 뜨면 예수님 얘기를 하자 ‘야! 아예 신학 공부를 해라!’고 핀잔을 주었고, 친구들은 너무 빠지지 말고 적당히 하라며 비아냥거렸다.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며 전력 질주할 때 하나님께서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는 말씀으로 책망하시며 먼저 사랑으로 진정한 사귐을 원하셨다. 크게 회개하고 공동체와 함께 생활관에서 신앙훈련을 받으며 새 성전으로 이전한 교회에서 3개월 넘게 본관을 청소하며 점심식사와 간식, 때론 저녁식사까지 준비했다. 공동체의 틈을 메우며 영원한 가족인 교회 지체들을 섬겼던 그 시간은 내 인생에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다. 많은 교회 지체들이 먼 곳에서 조문을 오시고 장례의 모든 절차를 내 일처럼 도와 주셨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와 오빠의 마음이 활짝 열렸고 오빠는 “야! 네가 나보다 인생 더 잘 산 것 같다.”며 진심의 고백을 했다. 그 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틈틈이 복음을 전했다. 감사하게도 많은 아이들이 예수님이 너무 좋다고, 예수님이 자신의 마음 안에 계신다며 기뻐했다. 교회에서 유년부 교사로 귀한 사명자들을 섬기며 토요일이면 잊지 않고 아이들과 캠퍼스, 공원, 길거리 등에 노방전도도 나갔다.

그 후 새로운 사명감으로 사회복지 공부를 하며 노인복지센터에서 어르신들을 섬겼다. 부축하여 함께 운동하고, 옷과 식사를 챙겨드리고, 화장실에서도 함께하는 일이 너무 기쁘고 감사했다. 어르신들은 내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알게 해 주셨다. 자격증을 따며 즉시 노인복지관에 들어가 로마서 16장의 ‘루포의 어머니가 곧 내 어머니’라는 말씀에 순종하며 어르신들을 돌보고 작은 교회 예배를 인도해 가고 있다. 나 밖에 모르던 독불장군이었지만, 주님이 보여주신 사랑으로 영혼들을 섬기는 삶은 날마다 천국이다. 주님 오실 날까지 이 사명만을 생각하며 오늘도 신바람 나게 사랑으로 영혼들에게 다가간다.

문기정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