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종 대상이 된 정치인… 상대를 적으로 모는 팬덤정치 안돼”

입력 2023-02-02 04:03
지난해 10월 10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서 열린 보수단체 주최 집회. 광화문광장에서의 집회가 금지되면서 대형 집회는 세종대로에서 자주 열리고 있다. 권현구 기자

극단적 팬덤정치는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절대 선’으로 여긴다. 동시에, 생각이 다른 정치인들을 적으로 몰아세운다. 이로 인해 대화와 타협을 가로막는 폐해가 발생한다.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극단적 팬덤정치의 벽을 넘어야 하는 이유다.

이준한 인천대 정외과 교수는 1일 “극단적 팬덤정치 출현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인물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정치문화와 SNS 등 뉴미디어의 발전 그리고 양극화된 정치환경이 맞물리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각 지지집단이 편향된 정보에 대해 더욱 의존하면서, 자기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증편향의 세계가 확대됐다”면서 “이제는 자기 생각만 옳고, 상대의 얘기는 전혀 들으려 하지 않다 보니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에 이르게 됐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요즘은 맹목적인 강도와 배타성은 강해지는 반면, 오히려 그 주기는 짧아지는 중”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에서는 ‘3김(김대중·김영삼·김종필) 시대’에서부터 지나친 인물 중심의 정치가 펼쳐졌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사태를 거치면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와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 등과 같은 보다 극단적이고 새로운 형태의 정치 팬덤이 등장했다는 것이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이때부터 ‘친노(친노무현)냐 비노(비노무현)냐’, ‘친박(친박근혜)이냐 진박(진짜 친박)이냐 비박(비박근혜)이냐’ 하는 등의 계파 갈등이 심화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율 명지대 정외과 교수도 “정치를 ‘사람 중심’으로 바라보다 보니 ‘정치 인격화’ 현상이 발생하고, 지지자들이 정치인을 감성적으로 바라보게 됐다”며 “이것이 정치인들을 향해 적이나 동지로만 보는 이분법적 구도로 발전한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로 인해 생각이 다른 정치인들을 협상의 대상이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규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극단적 팬덤정치의 원인은 제왕적 대통령제가 필연적으로 야기하는 정치 양극화 때문”이라며 “정치인들이 자신이 속한 집단 내에서 주류가 되고 싶어하기 때문에 더 극단적 주장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학 교수들은 정치인과 극단적 지지자들이 팬덤정치의 폐해를 자각해 자정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해법이라고 입을 모았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정치인 스스로 팬덤을 통해 정치적 동력을 얻으려는 것을 자제하고, 정당의 지도부도 그런 팬덤을 추구하는 정치인을 자제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이어 “팬덤정치가 SNS와 같은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증폭된 것인데, 폐해가 있다고 해서 이를 없앨 수는 없지 않으냐”면서 “결국은 정당이라는 정치 기구가 나름의 필터링을 통해 팬덤과 정치인 모두를 자제하도록 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팬덤정치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선 인물 중심의 정치가 아니라 이념과 정책, 정당의 미래와 비전을 중심으로 상호 경쟁하는 정치 문화를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결국 해법은 개헌밖에 없다”면서 “분권형 대통령제로 바꿔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비례대표 제도를 확대해 보다 다양한 국민의 목소리가 정치권에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당팀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