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 용병, 저랑 안 어울릴 것 같았죠?”

입력 2023-02-01 04:03

“감독님은 왜 자꾸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캐릭터를 나에게 덧씌우려고 할까, 그 의도가 너무 궁금했어요.”

넷플릭스 영화 ‘정이’가 공개되면서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현주(왼쪽 사진)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는 지난해 ‘지옥’에 이어 연상호 감독과 두 번째 합을 맞췄다. 전투 용병 인공지능(AI) 로봇 정이 역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로봇 연기에 도전했다.

‘정이’는 공상과학(SF)에 멜로드라마를 접목한 작품이다. ‘부산행’ ‘반도’ ‘지옥’ 등 장르적 시도를 해 온 연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근 미래에 인류가 지구가 아닌 우주의 다른 곳에 살면서 내전을 겪고 있다는 설정이다. 정이라는 전쟁 영웅의 뇌 데이터를 활용해 전투 용병 AI를 만드는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가 정이의 딸 서현(강수연)이다. 작품은 액션보다는 서현과 정이의 모녀 관계에 집중한다.


김현주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그의 대중적인 이미지와 정이라는 역할 간에 괴리감이 커 걱정이 많았다고 했다. 정이는 여전사 같은 강인함이 필요한 캐릭터였다. 90년대 청춘스타로 출발한 김현주는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지만 강렬한 장르물보다 주말극 이미지가 더 강했다. 김현주는 “로봇 연기와 용병, 이런 이미지를 나에게 덧대어 봤을 때 많은 분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배우로서 도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장르적인 것에 욕심이 늘 있었다”며 “연 감독의 실험정신, 끊임없는 도전, 새로운 장르를 해보려고 하는 시도가 내게도 자극이 됐다”고 밝혔다.

배우 류경수(오른쪽 사진) 역시 ‘지옥’에 이어 이번에도 연 감독과 함께 했다. 그는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지옥’과 영화 ‘대무가’ 등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렸다. 류경수가 맡은 상훈이란 인물은 AI 용병을 만드는 크로노이드 연구소 소장이다. ‘정이’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고 갖은 애를 쓴다. 정이의 전투력을 끌어내기 위해 가혹한 실험도 서슴지 않고 실행하다 서현과 반목한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크고, 능글맞으면서 오버스러운 인물이다. 김현주, 강수연이란 대선배들과 합을 맞추면서도 밀리지 않는 연기력을 보여줬다.

올해 서른둘인 류경수는 벌써 데뷔 16년 차다. 중학생이던 2007년에 데뷔했으나 이름을 알리기는 쉽지 않았다. 불러주는 곳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사람들은 다 내가 잘 한다 했는데 도대체 왜 불러 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힘들 때도 있었다. 그의 필모를 보면 조연이나 단역이 많다. 지난 26일 만난 류경수에게 역할이 작아 아쉽진 않았는지 묻자 “제발 불러만 달라고 생각하던 때라 작은 역할이라도 받으면 행복했다”고 답했다.

“보석을 캐려고 땅을 파면 얼마큼 파야 할지, 언제 보석이 나올지 모르잖아요. 그렇게 땅을 팠던 모든 시간이 쌓여서 지금의 제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땅을 파고 있고요.”

김현주와 류경수는 넷플릭스 시리즈 ‘선산’에서도 또 한 번 합을 맞춘다. 이 작품도 연 감독이 극본에 참여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