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평형수用 후쿠시마 해수 봉쇄”… 선원은 “배출 때 찜찜” [이슈&탐사]

입력 2023-01-31 00:03 수정 2023-01-31 10:06
부산항 제5부두에 30일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는 가운데 화물선들도 정박해 있다. 부산=이한형 기자

일본 후쿠시마 해수(海水)가 선박평형수로 실려와 국내항에 배출되는 문제에 대해 정부는 과거 ‘원천봉쇄’를 말했다. 하지만 이 조치에는 선사 측의 자진신고에 기대는 한계가 있다. 후쿠시마 인근을 기항하는 선원들은 ‘교환 후 입항’이 운항 기간을 늘려 비용 문제를 낳는다고 말했다. 서류상으로 교환을 신고했다는 증언, 국내항에서 문제 해역 평형수를 배출할 때면 찜찜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후쿠시마 인근 주입 평형수들에서 방사능 농도 기준치를 초과한 세슘·삼중수소 등이 발견된 사례는 현재까지 없다. 다만 이는 전수조사가 아닌 표본조사 결과다. 이르면 4월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가 시작되는 만큼 대응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정부와 현장, 학계의 시각이 일치한다. 정부는 후쿠시마 인근 해수를 실은 선박들의 ‘교환 후 입항’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교환 후 입항 권고 있는 줄 몰랐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해양수산부의 2014년 1월 15일자 비공개 공문 ‘일본에서 입항한 선박평형수 질의에 대한 회신’을 보면 과거 해수부는 평형수 유입을 원천봉쇄한다는 입장이었다. 해수부는 당시 “평형수 적재를 금지하고, 부득이 적재한 경우 입항 전 전량 교환토록 조치함으로써 방사능 오염 선박 평형수의 국내 연안 유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다”고 적었다. 선박이 국내에 입항하면 항만국통제관이 직접 승선해 점검한다고도 했다.

실제 후쿠시마현 인근 항만을 오가는 선원들의 말은 다르다. 10년 이상 후쿠시마현 오나하마항 등을 정기적으로 오간다는 일등항해사 A씨(45)는 “교환 후 입항 권고가 있는 줄도 몰랐다” “전혀 교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에서 화물을 내린 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해수를 탱크에 가득 채운다고 했다. 만 하루를 항해해 국내항 도착 뒤 평형수를 배출하는데, A씨는 “그럴 때마다 항상 찜찜했다”고 말했다.

정부 조치와 실제 선박 운영 간 괴리에는 국제기준인 ‘선박평형수 관리협약’이 있다. 이 협약에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선박은 평형수 교환을 2024년 9월까지 면제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 때문에 선원들이 일본 후쿠시마 인근 해역의 해수를 교환하지 않더라도 법적 문제는 없다는 해석도 있다.

조치 실효성 문제의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비용이다. 5000t 선박의 평형수 탱크 용적은 약 1500t, 용적의 3배를 ‘펌핑 흐름’ 방식으로 교환하는 데에는 18~20시간이 걸린다. 그나마 교환을 하려면 기존의 항로를 크게 벗어나도록 배를 틀어야 한다. 평형수 관리협약은 ‘육지로부터 200해리, 수심 200m 이상’ 기준을 만족하는 수역에서 평형수를 교환하게 한다. 선원들은 “통상적인 한·일간 항로에는 이를 만족하는 수역이 없다”고 했다.

B선사 관계자는 “태평양 쪽으로 나아가 평형수를 배출하고 다시 주입하려면 이로(정상 항로를 벗어나는 것)가 크게 발생한다. 연료비 소비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상익 전국해운노동조합협의회 운영관리본부장은 “100% 원천 차단이라는 건 말장난에 불과하다”며 “실제 교환하고 입항했다는 사실을 방사능 농도 측정치로 검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류 때 상황 달라진다”


선박이 평형수 주입량, 교환 위치 등을 부정확하게 보고하더라도 이를 완벽히 검증할 수는 없었다. 3년 전 미야기현 센다이항을 기항했다는 선장 C씨(38)는 “(국내항 입항 전) 서류상으로만 평형수 교환 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그의 선박평형수는 방사능 농도 조사를 받지 않았다. 전직 선장 D씨(48)는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먼저 그걸 얘기하겠느냐”고 자진신고의 허점을 말했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한 지방해양수산청의 조사 실적 공문에 따르면 이 수산청은 2021년 6월 일본 이바라키현 카시마항에서 평형수를 주입한 뒤 국내항에 배출한 선박을 조사하지 않았다. “처리설비 설치 선박으로 취수 불필요 판단”이 이유였다. 그런데 이 ‘처리설비’는 해조류 등을 제거하는 것이며, 방사능 핵종 처리와는 무관했다. 담당자는 “평형수 협약에 따라 취수가 불필요했다”면서도 방사능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항한 배가 점검 대상이 되거나, 평형수를 아예 싣지도 않은 선박이 점검된 사례도 있었다.

현장 실태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선원들의 평형수 교육을 담당하는 해수부 산하기관의 한 관계자는 “일본 후쿠시마 인근 해역에서 평형수를 실어와 우리나라에 버리는 것은 금지되고 있다”며 “아무도 어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해수부 산하기관의 관계자는 “컨테이너선 등에서의 평형수 배출량은 양적으로도 크지 않을 텐데, 그나마 기록과 보고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일본 정부의 오염수 방류를 앞두고 평형수 관리 대책을 강화했다. 종전까지는 없던 선박들의 평형수 주입 및 배출 정보의 ‘자동알림’ 체계를 지난해 3월부터 구축, 시행 중이라는 점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과거에는 선박들이 사전 신고한 것과 달리 교환이나 배출을 취소했을 때 실시간으로 알지 못했었다. 해수부 관계자는 “시행착오를 겪으며 업그레이드하고 있다”고 했다.

권고였던 후쿠시마 인근 평형수 주입 선박들의 교환 조치는 곧 의무화된다. 후쿠시마 인근 6개 현 17개 항에서 평형수를 적재한 이력이 있는 선박은 동경 133도선을 기점으로 일본 해역에서 평형수를 교환토록 한다는 것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평형수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오염수 방류가 시작되면 상황이 조금 달라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슈&탐사팀 박장군 정진영 이택현 이경원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