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가격’은 물건값이 쌀 때 소비자가 쓰는 말이다. 필자는 경제원론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착한 가격’이란 말을 쓰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가격은 균형보다 높거나 낮을 수 있다. 그러나 착하거나 나쁜 가격은 없다. 코로나 시대에 어렵게 식당 영업하는 분이 식자재, 인건비, 연료비가 다 올라 가격을 할 수 없이 올리면 착하지 않다는 말인가? 열정 페이 원하는 기업주에게 월급 제대로 달라면 ‘나쁜 임금’인가?
마이클 샌델 교수는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의 도입부에서 허리케인이 불어닥치는 미국 플로리다에서 생수 가격을 수십 배 올려 팔아먹는 장사치들의 부도덕성을 질타한다. 다른 사람들은 고생하는데 바가지 씌우면서 돈 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수를 비싸게 팔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다른 생수 사업자보다 먼저 비바람을 뚫고 생수를 공급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 생수 공급이 급증한다. 생수 가격은 빠르게 안정된다. 반대로 이런 바가지 상혼을 막겠다고 가격을 규제하면 재난지역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무거운 생수를 공급하는 사람들이 사라진다. 생수의 암시장 가격은 더 크게 뛴다.
‘의도’를 ‘정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마녀사냥처럼 매우 위험한 일이다. ‘의도’는 대부분 인격을 부여한 결과 나타나는 문제다. 기업과 시장에 대해서도 인격을 부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기업도 기업을 이끄는 기업주가 있고 시장도 사람이 활동하는 곳이지만 기업과 시장은 이윤 극대화 그리고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이끈다.
미국 민주당과 백악관은 온라인 시장에서 아마존, 구글, 애플, 페이스북과 같은 빅테크 기업들의 자사 우대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입법안을 추진했다. 빅테크가 자신들의 서비스 및 제품을 경쟁 사업자보다 유리하게 노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이 입법안은 작년 12월 상원을 통과하지 못했다. 빅테크가 소비자 편익을 높일 수 있다는 반론 때문이었다. 반독점법 논의는 독점기업을 자주 악마화한다. 그러나 독점적 기업을 무너뜨리는 것은 정부가 아닌 다른 기업이다. 경쟁자 아닌 경쟁 자체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 경쟁 당국의 일이다.
오래전 규제개혁위원장을 지낸 최병선 서울대 명예교수는 최근 저서 ‘규제 vs. 시장’에서 시장을 부익부 빈익빈, 약육강식, 착취, 협잡, 무질서, 혼잡, 혼란, 냉혹, 비열, 비윤리, 부도덕, 비인간, 부조리 등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로 의인화하고, 정부는 자애롭고 유능한 존재라고 기대하면 우리는 영원히 큰 정부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격적 존재가 아닌 사회나 시장에 대해 정의를 요구하는 것은 이를 의인화하는 것으로서 ‘카테고리 착오’라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의 설명을 강조한다.
천연가스 가격이 올라 난방비가 급등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서민들이 난방비로 고생하는데 정유사들이 큰돈을 벌었다며 이에 대해 횡재세를 걷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횡재세 세입으로 거둬들인 돈을 난방비로 고생하는 서민에게 풀자는 것이다. 사실 정유사는 천연가스를 수입하는 공기업인 가스공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같은 에너지 산업으로 분류된 정유사가 이 어려운 때에 높은 수익을 본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경제 논리와 무관하게 기업과 시장을 의인화해서 감정을 이입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제 유가가 오른 작년 우리 정유사들은 617억 달러의 석유제품을 수출해 무역적자 폭을 그나마 많이 줄였다. 손실이 났을 때 보상해 주지도 않으면서 이윤이 났다고 그 과실을 뺏으려는 것은 시장원리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시장에 인격을 부여하면 안 된다.
조성봉(숭실대 교수·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