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싸는 고법판사 역대 최다… “김명수 인사 사실상 실패”

입력 2023-01-30 04:07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2일 대법원 시무식에 참석한 모습. 대법원 제공

김명수 대법원장이 단행한 마지막 고위 법관인사에서 역대 최다 인원의 고법판사가 퇴직한 것으로 집계됐다. 법원 안팎에선 “고법판사가 법원에 남아 있을 유인이 없다”며 법관인사 이원화 정책이 사실상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7일 발표된 고위 법관인사 결과 15명의 판사가 법원을 떠났다. 사법고시 수석 출신인 정수진(사법연수원 32기) 판사를 비롯해 법원행정처 기획심의관을 지낸 이호재(28기) 판사와 김영진(35기) 판사 등 과거였다면 ‘승진 코스’을 밟고 있을 엘리트 판사들이 대거 법복을 벗었다.

법원 내부에선 이번 인사 전부터 고법판사의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고법판사는 지방법원 부장판사 수준의 경력을 갖춘 이들로 고법 부장판사와 일하며 사실상 배석 판사 역할을 맡거나 실질 대등재판부에서 각종 2심 사건을 심리하기 때문에 실력과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이 때문에 변호사 시장에선 고법판사 출신의 인기가 날로 높아지는 추세기도 하다. 법원의 허리라 할 수 있는 이들의 ‘엑소더스’는 사법부 입장에서도 큰 손해일 수밖에 없다. 이미 2021년 9명, 지난해엔 13명의 고법판사가 사표를 던졌다.

김 대법원장 체제에서 법원 내 승진제도라 할 수 있는 고법 부장판사제가 폐지되면서 고법판사가 설 곳이 좁아졌다는 게 주요 이유로 꼽힌다. 지방법원장 역시 지법 부장판사 중에서 임명되기 때문에 고법판사들에겐 법원장이 될 기회도 마땅치 않다. 한 고법판사는 “법원에서 할 수 있는 사건들을 웬만큼 다 심리했는데도 고등법원에 정체돼 있어야 한다는 느낌이 강하다”며 “고법 부장판사 제도를 되살리는 게 정답은 아니지만, 승진 유인이 없다는 게 현실적 고민인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고법판사 유출은 법관인사 이원화 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금처럼 고등법원 구성원이 자리를 비우면 결국 지방법원에서 고법판사를 다시 선발할 수밖에 없다. 일선 법원의 한 판사는 “고법판사가 법원에 남아 있지 않은데 어떻게 인사 이원화가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