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 핵연료 저장에 대한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7년 뒤 원자력발전소 가동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30년에는 원자로에서 연료로 쓰인 뒤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하는 시설이 포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입법 절차는 14년째 지지부진한 상태다.
29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당초 2031년으로 예상됐던 국내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포화 시점은 2029~2030년으로 1~2년 앞당겨질 전망이다. 탈원전 대신 원전 적극 활용을 선택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반영되면서 예상 포화 시점이 앞당겨졌다.
가장 먼저 위기를 맞을 곳으로는 지난해 기준 사용후핵연료 포화율이 87.5%에 달하는 고리원전이 꼽힌다. 한빛원전(77.9%)이나 월성원전(75.5%), 한울원전(74.7%)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적어도 저장용량을 늘릴 수 있는 ‘부지 내 저장시설’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부지 내 저장시설도 안전성을 확보하려면 7년가량 건설 기간이 필요하다. 올해 공사를 시작하지 못할 경우 원전이 멈추는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관련 입법 논의에는 진전이 없다. 국회에는 부지 선정과 주민투표, 공청회, 설치 절차 등의 내용을 담은 사용후핵연료 처리 관련 법안이 3건 발의돼 있지만 상임위 통과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다. 지난 26일 국회에서 열린 법안 공청회에 참석한 시민단체들은 이 법안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정부가 2009년 사용후핵연료 저장 방안 공론화를 시작한 이후 어떤 결론도 내놓지 못하다보니 다른 주요 원전 운영국과의 격차는 크게 벌어졌다.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 영국 등은 중간저장시설을 운영하면서 최종 단계인 영구처분시설 부지 마련 과정에 들어간 상태다. 중간저장 대신 아예 영구처분시설을 운용하기로 한 나라도 있다. 핀란드 올킬루오토 영구처분시설은 2025년부터 가동될 예정이다.
반면 ‘원전강국’을 자처하는 한국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부는 2030년에 국내 발전량 중 32.4%를 원전으로 충당하겠다는 구상을 최근 확정했다. 사용후핵연료 포화 시점을 늦추지 못한다면 2030년에는 현재 전력량의 3분의 2 정도만 공급받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게다가 포화 상태인 원전은 안전성을 담보하기도 어렵다.
산업부 관계자는 “탈핵단체는 특별법 제정이 원전 지역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으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하지만 특별법이 없으면 원전 지역에 사용후핵연료를 계속 임시로 저장하는 일이 고착화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특별법이 만능은 아니지만 정부가 방사성 폐기물(사용후핵연료)을 사용한 후 관리하겠다는 최소한의 장치에 관한 내용이다.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