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망과 욕망의 할리우드는 황홀하고 위태로운 ‘바빌론’

입력 2023-01-30 04:03
영화 ‘바빌론’에서 파티장에 앉아있는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와 마누엘 토레스(디에고 칼바).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1920년대 꿈과 환락의 무대 할리우드, 잭 콘래드(브래드 피트)는 누구나 한 번쯤 만나고 싶어하는 당대 최고의 배우다. 가난한 배우 지망생 넬리 라로이(마고 로비)는 어느 날 파티에 갔다가 우연히 영화에 캐스팅되고, 벼락스타로 떠오른다. 영화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찬 이민자 출신 마누엘 토레스(디에고 칼바)는 제작사 직원으로 할리우드에 입성한다.

무성 영화의 시대가 저물면서 잭도 관객들의 비웃음을 받는 퇴물이 된다. 넬리의 인기도 사그라든다. 마약과 도박에 찌들고 빚더미 위에 올라앉은 넬리는 쫓기는 신세가 된다. 마누엘은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며 업계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지만 넬리에 대한 오랜 마음은 그를 위기로 몰아간다.

영화는 황홀하면서도 위태로운 고대 도시 바빌론에 비유되던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꿈을 쟁취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위플래시’(2015), ‘라라랜드’(2016), ‘퍼스트맨’(2018) 등을 만들며 할리우드 천재 감독으로 떠오른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신작이다.

강렬한 미장센으로 가득찬 광란의 파티, 허허벌판에 지어진 세트장에서 수천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해 자연광으로 영화를 찍는 모습 등 인상적인 장면들이 끊임없이 펼쳐친다.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뼈를 갈아넣는’ 감독과 배우, 스태프들의 모습은 영화 곳곳에서 코미디로 승화됐다.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뿐만 아니라 감각적인 연출, 미술, 음악, 의상 등 다채로운 요소로 관객들의 눈과 귀를 흥분시킨다. 188분의 긴 러닝타임에도 지루할 틈이 없다.

영화는 브래드 피트, 마고 로비 외에도 화려한 캐스팅으로 눈길을 끈다. 마누엘 역의 디에고 칼바는 셔젤 감독이 18개월간의 오디션을 통해 주인공으로 발탁한 할리우드 신예다. ‘1대 스파이더맨’ 토비 맥과이어는 로스앤젤레스의 카지노 보스 제임스 맥케이를 연기한다.

전작들에서 셔젤 감독과 호흡을 맞춰온 저스틴 허위츠 음악감독은 1920년대 재즈 사운드를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바빌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라라랜드’의 팬이라면 전작과 비슷한 분위기로 반복되는 테마 멜로디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감독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뒤로 할리우드에 대한 환멸을 쏟아내는 동시에 영화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 ‘영화의 위기’라는 말은 지금도 존재하고 무성영화 시대에도 존재했지만, 앞으로도 영화는 망하지 않을 거란 절절한 메시지를 던진다. 영화 후반부 극장에 앉은 마누엘의 눈 앞에 펼쳐지는 할리우드의 역사는 영화 애호가라면 가슴이 뭉클할 만한 장면이다.

‘바빌론’은 제80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음악상, 제28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 미술상을 수상했다. 다음달 개최되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의상상과 음악상, 미술상에 노미네이트됐다. ‘헤어질 결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탑건: 매버릭’ 등과 함께 BBC가 선정한 2022년 최고의 영화 20편에 뽑혔다. 다음달 1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