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북한 공작금

입력 2023-01-28 04:11

북한 인권 운동가 김영환씨는 1991년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났다. 이후 김씨는 공작금 20만 달러와 권총 2정을 받고 돌아왔다가 구속됐다. 당시 서울 강남 30평대 아파트가 2억원대였고, 대졸 사무직 4년차 직원 평균 월급이 100만원이 되지 않았다. 20만 달러는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 6340달러의 31배였다. 김락중 전 민중당 대표(작고)는 1992년 국가안전기획부에 잡혔는데, 김 전 대표의 집 장독대 밑에서 100만 달러가 발견됐다. 안기부는 김 전 대표가 북한으로부터 모두 210만 달러의 공작금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적발된 북한 공작금으로는 최대 규모였다.

북한의 지령을 받아 F-35A 스텔스기 도입 반대 활동 등을 벌인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조직원 3명이 2021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은 2019년 중국 선양에 있는 무인함에서 공작금 2만 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현재 환율로 2458만원이다. 올해 4인 가구 중위소득 평균이 512만원이니 4개월 소득 정도다. 이 돈으로는 그럴듯한 간첩 활동을 벌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최근 국가정보원과 경찰이 민주노총 전 간부 등이 포함된 간첩단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구체적인 실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지금까지 언론을 통해 알려진 공작금 규모는 크지 않다. 경남 창원의 활동가들은 북한으로부터 7000달러(약 860만원)를 받은 것으로 보도됐다. 서울의 다른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자는 베트남에서 공작금을 받아 국내에서 1만 달러(약 1229만원)를 환전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한때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 북한이 간첩을 보내고 싶어도 보낼 형편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 실제 전직 국정원 고위간부는 사석에서 “인터넷에 다 나오는데 북한 간첩이 뭐하러 국내에 들어오겠는가”라며 “무엇보다 북한에 돈이 없다”고 말했다. 과거엔 간첩이라는 단어는 무시무시한 공포를 불러일으켰지만, 요즘은 간첩이라는 단어가 왠지 짠하다는 느낌마저 풍긴다.

남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