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3세·美국적 가수·前경찰청장 아들… ‘마약 이너서클’ 덜미

입력 2023-01-27 04:06

재벌 3세 등 유력층 자제들이 해외 유학 시절부터 ‘이너서클’을 형성해 상습적으로 대마를 거래하고 투약한 혐의로 무더기 기소됐다. 이들 중에는 임신한 부인과 태교 여행 중 대마를 피우거나, 어린 자녀와 사는 집 안에서 대마를 재배하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부장검사 신준호)는 남양유업 창업주 손자 홍모(40)씨가 재미교포로부터 공급받은 대마를 유통 및 흡연한 사건을 집중 수사한 결과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10명을 구속 기소하고 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26일 밝혔다. 해외 도주한 3명을 포함하면 모두 20명이 입건됐다.

우선 홍씨와 범효성가 3세 조모(39)씨, JB금융지주사 일가인 임모(38)씨, 미국 국적의 3인조 그룹 가수 안모(40)씨 등 9명은 지난해 11~12월 재판에 넘겨졌다. 조씨는 이날 열린 첫 재판에서 대마 매수·흡연 혐의에 대해 “모두 인정하고 자백한다”고 말했다. 홍씨 등이 기소된 사실이 알려지자 전직 경찰청장의 아들 김모(45)씨 등 4명은 검찰에 자수했으며, 추가 수사를 통해 고려제강 창업자 손자 홍모(39)씨, 중견 건설업체 대창기업 회장의 아들 이모(36)씨 등 7명의 마약 혐의가 추가로 적발됐다.

김씨의 경우 지난해 3~10월 남양유업 일가 홍씨로부터 대마를 4차례 매수하고, 사업가나 컨설팅업체 이사 등에게 5차례 매도한 혐의를 받는다. 이씨는 지난해 1~10월 모두 8차례 대마를 판매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한일합섬 창업주 손자 김모(43)씨 등 3명은 미국·동남아 등 해외로 출국해 지명수배됐다.

이들은 대부분 해외 유학생 출신에 비슷한 연령대로 유학 생활 중 접한 대마를 끊지 못하고 귀국 후에도 당시의 인맥을 통해 대마를 거래하거나 피운 것으로 조사됐다. 최상선 공급책으로 지목된 재미교포 사업가 이모(38·수감 중)씨가 국내로 들여온 대마가 재벌가 후손, 전직 고위관료 자녀, 연예계 종사자 등의 이너서클에서 알음알음 유통되는 구조였다. 다만 이씨는 홍씨에게 대마를 판 사실만 인정하고, 나머지 혐의에 대해선 함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씨가 사용하던 아이폰에 대해 포렌식을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범죄수사부는 26일 남양유업 창업주 손자 홍모씨 등 재벌 3세를 비롯한 유력층 자제 17명을 대마를 거래하고 피운 혐의로 무더기 기소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함께 기소된 미국 국적 가수 안모씨의 집 거실에 대마 줄기가 걸려있는 모습. 서울중앙지검 제공

가수 안씨는 미성년인 자녀와 함께 사는 집에서 대마를 키워 대마 줄기를 집 안에 걸어놓기도 했다. 안씨의 제주도 거주지 인근 감귤밭에서는 감귤 나무 사이로 대마 나무가 대거 발견됐다. 대창기업 회장의 아들 이씨는 임신 중인 아내와 해외로 태교 여행을 가서도 대마를 흡연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지난해 9월 대마 재배 혐의를 받는 김모(39)씨 사건을 경찰에서 송치받은 후 직접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팀은 김씨 집에서 압수한 국제우편물 등을 토대로 추가 수사를 벌여 홍씨 등을 검거했다. 이후 관련자들 통화 내역과 휴대전화 포렌식 분석 등을 통해 다른 유력 집안 마약 사범들의 꼬리를 잡았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