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이 평화로운 동네’ 양평동서 116년 교회 전통 세우다

입력 2023-01-30 03:06
김경우 목사가 지난 26일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교회 사료실에서 교회 창립 초기에 교인들의 세례 관련 기록 등이 담긴 ‘양평동교회교우문답집’을 가리키며 교회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교회(김경우 목사) 마당에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끈다. ‘둥근잎느티나무’라는 이름의 나무다. 영국이 원산지인 이 나무는 교회에서 ‘자식 나무’라 불린다. 이 교회 김려성 원로장로가 1908년 심은 ‘어머니 나무’에서 2005년 가지 하나를 꺾꽂이해 둔 덕분에 명맥을 유지하게 된 2세대 나무여서다.

당시 김 장로는 작은 가지를 잘라 교회 마당 한쪽에 심었고 10년 동안 정성껏 키웠다. 2015년 107살 된 어머니 나무가 죽자 10살 된 자식 나무를 그 자리에 대신 심었다. 새로운 107년의 미래를 향한 꿈을 심은 셈이 됐다.

1907년 창립한 교회에 처음 나무를 심은 사람은 이 교회를 설립한 호레스 그랜트 언더우드 선교사다. 1885년 우리나라에 온 언더우드 선교사는 안식년에 미국에 갔다 1908년 귀국하면서 두 그루의 둥근잎느티나무 묘목을 가지고 왔다. 이를 각각 양평동교회와 새문안교회에 심었고, 묘목은 교회 역사와 함께 성장했다.

116년 역사의 양평동교회를 26일 찾았다. 로비에 들어서자 교회의 긴 역사를 조망할 수 있는 사료실이 보였다. 김경우 담임목사는 사료실에 전시된 ‘양평동교회교우문답집’ 앞에 서서 교회 역사의 첫 장을 소개했다.

“이 문답집은 초창기 우리 교인들의 세례에 대한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교인들의 나이와 신앙 경력, 주소, 직업, 가족 사항과 학력까지 기록돼 있어 20세기 초 이 지역의 사회상 연구를 하는 데도 꼭 필요한 귀중한 사료입니다.”

이 자료는 양평동교회가 걸어온 긴 세월의 한 조각일 뿐이다. 교회에서는 그동안 세 명의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총회장이 배출됐다.

1912년 언더우드 선교사를 시작으로 1928년 차재명 목사를 비롯해 1959년 예장합동과 교단이 분열 뒤 예장통합 총회의 두 번째 총회장으로 기록된 유재한 목사가 모두 양평동교회 담임목사였다.

교인들은 1919년 3·1운동에도 조직적으로 참여했다. 서울 도심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고 20여 일이 지난 3월 23일 교인이던 탄원기 성도의 주도로 ‘양평리 만세시위’가 시작됐다. 만세시위에 적지 않은 교인이 참여했고 일제 경찰에 붙잡혀 투옥됐다. 예장통합 총회는 2019년 이 공로를 인정해 ‘1919년 3·1운동 참여교회’로 지정했다.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주민과 희로애락을 공유해 온 교회의 저력은 과거와 미래 사이의 빈틈을 채우는 거멀못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김 목사 부임 이후엔 매년 12월마다 영등포 쪽방촌 주민들에게 사랑의 선물을 전하는 게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교회는 지난달 초 교인들에게 빈 가방 500개를 나눠줬다. 가방을 챙긴 교인들은 생필품과 먹거리를 가득 채운 뒤 다시 교회로 가지고 왔다. 이렇게 모아진 가방은 지난달 20일 영등포 일대 쪽방촌 주민들에게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전달됐다. 이 교회 청년들은 쪽방촌에서 캐럴을 부르며 예수 탄생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

김 목사는 “그동안 성탄절 오후에 영등포 일대 쪽방촌을 찾았는데 지난해만 영등포산업선교회와 함께 행사를 진행하며 성탄절 닷새 앞서 쪽방촌을 방문했다”면서 “코로나 중에도 이들을 찾았는데 앞으로도 교회의 좋은 전통으로 이어지길 소망한다”고 바랐다.

이어 “오랜 역사만 앞세우는 교회가 아니라 지역사회와 함께 걸어가는 전통이 자랑이 되는 교회로 만들고 싶다”면서 “우리교회가 그동안 주민과 함께 지낼 수 있었던 건 교회 내부가 편안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목사의 말대로 교회는 창립 이후 지금까지 다툼이 없었다. 2016년 말 담임목사로 부임한 김 목사가 18대라는 게 이를 증명한다. 미자립 상태이던 1950년 6·25전쟁 전까지는 목회자 이동이 잦은 편이었다. 하지만 1963년 이정학 목사(34년 시무)가 부임한 뒤에는 김규 목사(23년 시무)에 이어 지금의 김 목사 등 세 명의 담임목사가 강단을 지키고 있다.

김 목사는 “전임 김규 원로목사님이 양평동을 ‘양들이 평화로운 동네’라고 풀이한 것처럼 교회도, 지역사회도 평화로웠다”면서 “평화를 나누는 사역을 앞으로도 이어가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를 지나며 교회 중·고등부가 성장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엔데믹 이후 교회는 인근 선유고 한강미디어고에 신앙을 가진 학생들이 모이는 자율 동아리를 만들고 지속해서 후원하는 ‘학원 복음화 인큐베이팅’을 진행하고 있다. 학교(자율 동아리)와 교회를 연결한 뒤 서로 ‘윈-윈’하는 결과를 낳았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중·고등부는 2배 가까이 성장했다.

김 목사는 “교회학교만 성장하는 게 아니고 인근 학교의 기독 동아리와 함께 협력하며 성장하는 게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면서 “새로운 100년을 위해 당회원과 교인이 주민과 함께 달리겠다”고 밝혔다.

글·사진=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