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파와 SF 결합한 ‘정이’… 낯섦을 표현하려 했다”

입력 2023-01-27 04:04
최근 넷플릭스 영화 글로벌 톱에 오른 ‘정이’를 연출한 연상호 감독. 넷플릭스 제공

‘부산행’ ‘반도’ ‘지옥’을 흥행시킨 연상호 감독이 또 한 번 전 세계 시청자의 눈길을 끄는 작품을 들고 왔다. 지난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정이’다. 이 작품은 지난 24일 기준 넷플릭스 영화 글로벌 톱에 올라섰다. 지난해 그가 연출한 시리즈물 ‘지옥’이 글로벌 정상을 차지한 지 거의 1년 만이다.

‘정이’는 액션물이라기보다 공상과학(SF) 드라마에 가깝다. SF와 드라마라는 조합 자체가 이질적이다. 그게 바로 연 감독이 의도한 포인트이기도 하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연 감독은 “처음 ‘정이’를 기획했을 때 SF가 먼저였는지 멜로드라마가 먼저였는지 모르겠다. 동시였던 것 같다”며 “신파와 SF를 결합했을 때의 낯섦을 표현할 수 있는 작품으로 ‘정이’를 기획했다”고 했다.

‘정이’의 배경은 2135년이다. 인류는 지구를 떠나 우주에 ‘쉘터’라는 새로운 터전을 찾아 이주했다. 하지만 인류는 40년간 내전을 겪게 되고, 모두가 전쟁에 지쳐가기 시작했다. 이때 탄생한 전설적 용병이 윤정이(김현주)다. 크로노이드 연구소는 전투 중 식물인간이 된 정이를 인공지능(AI) 로봇으로 구현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사람이 정이의 딸 윤서현(강수연)이다.

영화는 액션 자체보다는 정이와 서현, 두 사람의 모녀 관계에 집중한다. 아픈 딸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전쟁에 참여했던 정이는 로봇으로 재구현된 후에도 딸에 대한 기억을 원동력으로 전투력을 발휘한다. 서현은 정이의 뇌 데이터에서 자신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 모성애에 얽매여 존재 이유 자체가 딸이었던 엄마를 비로소 해방시켜준 것이다.

로봇물과 드라마의 결합은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해 온 연 감독에게도 두려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이 영화가 위험해 보였어요. 그래서 강수연 배우가 중심이 됐죠. (강수연을 통해) 고전 한국 영화 같기도 하면서 SF영화 같은 느낌이 들길 바랐죠.”

그는 ‘정이’에 대해 “내가 인상 깊게 본 작품을 거의 총망라했다”고 설명했다.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로봇을 그린 스티븐 스필버그의 ‘A.I’와 ‘블레이드 러너’, ‘공각기동대’ 등을 언급했다. “저는 항상 이질적인 결합에 눈길이 가요. SF라고 하면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 같은데 그 속에 익숙한 것들을 넣고 싶었어요. SF물이지만 한국적이고 고전적인 ‘정이’라는 제목처럼요.”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