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도 제도 개선도 미적미적, 정부가 전세사기 공범”

입력 2023-01-26 00:05

‘1세대 빌라왕’은 2019년 무렵 꼬리가 밟혔지만 이후 수사 기관의 조사와 처분은 지지부진했다. 그러는 사이 이들의 수법을 어깨너머로 익힌 ‘2세대 빌라왕’들은 전국으로 뻗어 나가 같은 수법의 사기 행각을 벌였다. 정부 기관은 떼인 전세보증금을 대신 갚은 역할에 머물렀다. 피해자들이 “정부가 공범”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2019년 8월 경찰은 화곡동에서 수백채 빌라를 보유한 강모(56)씨와 공인중개사 조모(54)·김모(47)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이 사건은 전세사기 첫 입건 사례로 주목받았다. 이후 경찰은 1년여의 수사를 거쳐 2020년 11월 이들을 서울남부지검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2년이 넘도록 사건 결론을 내지 못했다.

피해자들은 이른바 ‘무자본 갭투기’ ‘동시 진행(매매·전세계약)’ 등 강씨 일당의 전세사기 수법만 알려지는 효과를 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조씨가 운영한 A부동산은 업계에서 동시 진행 수법을 만들어낸 ‘원조 격’으로 꼽힌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조씨와 김씨 등 A부동산 관계자들이 처음으로 분양대행사를 직접 찾아가서 ‘집을 팔고 세입자를 구해주겠다’고 먼저 제안하며 전세사기를 벌이기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피해자 법률대리인인 신중권 법무법인 거산 변호사는 “검찰이 2년 넘게 기소를 하지 않는 등 강씨 일당의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오히려 ‘이렇게 돈 버는 방법이 있다’는 바이럴 마케팅이 됐다”며 “그때 빨리 처벌했더라면 적어도 같은 수법으로 피해자들을 양산하는 건 막을 수 있지 않았겠나”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강씨가 입건돼 수사를 받던 무렵 2세대 빌라왕들은 경쟁적으로 부동산 법인을 만들어 보유 주택을 늘리는 등 몸집을 불렸다. 3400여채 ‘빌라의 신’ 권모(52)씨 일당의 B주택, ‘광주 빌라왕’ 정모(50)씨의 C주식회사, 지난해 10월 사망한 ‘천빌라’ 김모(43)씨의 ‘D하우징’도 모두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피해자들은 세 모녀 전세사기 등 다른 사건들이 재판에 넘겨진 후인 지난해 11월 이후에야 뒤늦게 수사에 속도가 붙었다고 주장한다. 검찰은 사건 접수 3년5개월이 흐른 지난 4일 강씨는 구속 상태로, 조씨·김씨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수사를 맡았던 서울남부지검은 “늦어진 측면이 있다”면서도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에는 전례가 거의 없다 보니 범행 구조와 수법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강씨가 보유한 주택 283채를 하나하나 입증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며 “지난해 9월 전담팀이 꾸려지면서 수사에 속도가 붙은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제도 개선에 미진했던 정부 부처들도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고 비판했다. 김인만 부동산연구소장은 “세금 체납 여부 등 임대인의 범죄사실까지 정부가 공개하지 않은 채 보호해줬고, 처벌은 솜방망이였고, 보증보험을 허술하게 관리해 국민 세금으로 사기꾼들의 주머니를 채워줬다”며 “그 덕분에 사기꾼들이 양심만 버리면 손쉽게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임대차 관련 제도가 미흡했다는 지적은 일부 합당한 부분도 있다”며 “다만 사인 간 계약이 체결된 이후 발생한 문제까지 정부가 개입해 구제하는 덴 제약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양한주 김판 성윤수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