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제도상 환경적 보전 가치가 1·2등급인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내에서는 어떤 형태의 개발 사업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원칙은 정부 내에 시급한 현안이 발생하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수도권 주택 공급이 부족하다는 여론이 일자마자 일제히 그린벨트 해제 절차를 밟은 3기 신도시 사례가 대표적이다. 전문가들은 유명무실한 그린벨트 환경평가 제도를 손봐야만 무분별한 해제 사례가 반복되지 않을 거라고 지적한다.
현재와 같은 그린벨트 환경평가 제도가 도입된 것은 1998년부터다. 그린벨트 자체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정부는 그린벨트 제도개선협의회를 구성하고 존치 여부를 따졌다. 그 결과 수도권 등 7개 권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그린벨트를 전면 해제하기로 했다. 그린벨트로 남겨 두는 곳에 대해서도 환경평가를 실시해 등급이 낮은 곳 중심으로 추후 해제 절차를 밟는 것으로 결정했다.
등급 평가는 모두 6개 항목을 토대로 삼았다. 표고, 경사도, 농업적성도, 임업적성도, 식물상, 수질을 평가해 1~5등급 판정을 내렸다. 등급이 낮을수록 환경적 가치가 높다. 평가는 개별 항목 등급 평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되, 이 중 1개 항목이라도 1등급 판정을 받는다면 다른 항목 평가 결과와 무관하게 종합 등급이 1등급이 되도록 설계했다. 종합 평가가 1·2등급이 나온 지역은 원칙적으로 주택·산업단지 건설 등 개발사업을 할 수 없다는 규정도 만들었다. 각 항목이 지닌 가치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김중은 국토연구원 연구위원은 25일 “개별 항목이더라도 보전 가치가 있다면 유지해야 한다는 판단이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린벨트 제도를 대폭 개편한 지 25년이 지난 현재 시점에서 보면 이 원칙은 사실상 허물어진 상태다. 정부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시기인 2021년에 수도권 소재 그린벨트를 대규모로 해제했다.
인천 계양 테크노밸리와 남양주 왕숙, 하남 교산, 고양 창릉, 부천 대장 지구 소재 그린벨트가 한 해에 풀렸다. 모든 지역이 300만㎡ 이상 대규모 그린벨트 해제를 통해 주택 공급 지구로 설정됐다.
대상지 내에는 농업적성도 상 1등급인 곳도 무더기였다. 하지만 2015년 규제 완화 과정에서 농림축산식품부와 협의를 통해 해제가 가능하도록 한 점이 그린벨트 해제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농지를 사들여 ‘알박기’ 투기를 했다는 논란이 제기된 것도 이와 같은 규제 완화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전문가들은 그린벨트 존치의 핵심 요소인 환경평가가 지닌 한계가 부른 상황이라고 평가한다. 김 연구위원은 “각 지역의 그린벨트의 보전 가치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평가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다만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