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뇌손상 장애를 입은 딸의 법정 후견인으로서 1년마다 법원에 딸의 재산과 신상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A씨의 후견사무 보고서를 검토하던 전현덕 후견감독담당관(사무관)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A씨 딸이 입원한 병실이 ‘남성 6인실’로 적혀있었던 것이다. 알아보니 A씨는 병원비를 아끼기 위해 상대적으로 입원비용이 저렴한 남성 다인실에 딸을 입원시켰다고 했다.
하지만 탈의 등이 수시로 이뤄지는 병실 상황을 고려하면 여성이 남자 환자들 사이에서 지낼 순 없었다. 그렇다고 딸을 위해 애써 온 A씨를 후견인에서 해임하는 것도 모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법원은 일단 A씨 딸의 병실을 옮기도록 하고, 일정 기간 이들 사이를 지켜볼 수 있는 후견감독인을 선임했다. 전 사무관은 “후견인을 제3자로 선임하는 게 과연 피후견인의 권익에 보탬이 되는지 고민이 될 때 감독인을 통해 사무 지도를 하고 필요한 지원을 찾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성년후견제도가 한국에서 시행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2021년 성년후견 사건이 8605건 접수될 만큼 이용자가 늘었지만, 후견제도에 대한 오해는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다. 자녀가 고령 부모의 후견개시심판을 청구해 정작 후견인이 된 뒤에는 “법원은 집안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런 상황을 바로잡고 후견인과 피후견인을 지원하기 위해 6년 전 서울가정법원에 후견센터가 만들어졌다. 지난 19일 센터에서 전현덕·백승혜·박성은 후견감독담당관을 만났다.
‘후견 감독’ 담당관이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세 사람이 주요 업무는 후견사건이 종료될 때까지 후견인과 피후견인의 상황을 점검하는 일이다. 후견인이 후견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심적·물적으로 지치는 바람에 피후견인이 어려운 상황에 놓이는 걸 예방하자는 취지다.
발달장애인 아들의 후견인으로 선임된 고령의 아버지 B씨가 후자의 사례였다. 후견사무 보고 과정에서 B씨가 아들을 보낸 시설이 비인가 상태라는 게 밝혀졌지만, B씨에겐 다른 시설을 알아보고 바꿀만한 여력이 없었다. 전 사무관은 “고민을 하다가 후견인을 사회복지사인 국선 후견인으로 변경했다”며 “국선 후견인이 피후견인을 다른 시설로 옮긴 이후 피후견인의 상황도 안정됐고 부친 역시 여유가 생기면서 아들과 면회도 자주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감독과 견제만이 이들 업무의 전부는 아니다. 백승혜 가사조사관은 ‘노(老)-노(老)’ 후견 사건을 맡았던 기억을 꺼냈다. 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한 70대 아내의 후견인이 된 남편 C씨는 본인 또한 고령에 암 수술까지 받아 후견업무를 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이를 파악한 백 조사관은 국선 후견인을 공동으로 선임했고, 국선 후견인은 C씨 부부의 상황을 매달 확인하고 필요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연계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백 조사관은 “도움이 필요한 분들이 저희에게 연락을 줘서 재판장님과 어떻게 지원하면 좋을지 논의했던 기억이 있다”고 덧붙였다.
직업 특성상 후견인 선정을 둘러싸고 ‘관계인’이 된 자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분쟁도 자주 접하게 된다. “후견 제도에 대한 오해와도 연관 되는 부분인데, 가족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후견제도를 선택하는 경우가 있어요. 예컨대 고령인 부모의 재산을 자녀 한 명이 독차지하려는 것 같다 싶으면 나머지 자녀들이 후견심판을 청구하는 거죠. 후견을 상속 재산을 지키기 위한 제도로 오해하는 거예요.”(전 사무관)
드물지만 피후견인의 재산을 빼돌리는 후견인도 있다. 이 경우 법원은 원상복구 명령을 내리고, 시정되지 않으면 고발까지 검토한다. 설령 친족 관계라도 피후견인의 재산을 마음대로 쓸 경우 횡령죄로 처벌될 수 있다.
후견제도에 대한 다른 기관의 몰이해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박 행정관은 “후견 등기부를 가져가도 은행에서 통장 개설을 못 해준다고 하는 경우들이 있다”며 “‘누워있는 피후견인을 데려오라’고 하면 후견인들이 저희에게 전화를 건다. 후견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일이라고 설명해 드려도 안 된다고 할 때는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고령화 시대에는 후견제도가 더 많이 이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담 재판부와 감독센터 확충이 필요하다고 세 사람은 입을 모았다. 현재 후견센터는 서울과 수원 두 곳뿐이다. 서울가정법원 후견센터에는 18명의 후견감독담당관이 1인당 270~300건의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꼼꼼히 감독하고 실사를 나갈 수 있어야 사각지대를 발굴할 수 있기 때문에 인력 충원은 필수적이라고 이들은 강조했다. 전 사무관은 “모든 법원에 다 두기 어려우니 광역 개념으로라도 센터를 둔다면 피후견인 보호에 발생하는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후견센터 문을 두드리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박 행정관은 “후견인들께서 법원에 뭘 보고해야 한다고 하고 저희가 감독관이라고 하니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계신 경우도 많다”면서 “지원하는 역할, 후견인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얘기를 들어드리는 역할도 해드릴 수 있으니 어려워하지 말고 찾아와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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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후견제도=법원 결정 또는 후견계약으로 선임된 후견인이 장애 질병 노령 등으로 정신적 제약이 있는 성인(피후견인)에게 재산관리 및 일상생활 관련 보호 지원을 해주는 제도. 본인, 배우자, 4촌 이내 친족뿐 아니라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장도 성년후견개시를 청구할 수 있다. 법원이 건강, 생활관계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해 후견인을 선임하게 되며 친족을 비롯해 변호사 법무사 사회복지사 등도 후견인이 될 수 있다.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