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픽스 흔드는 ‘당국의 입’… 시장안정자일까 시장교란자일까

입력 2023-01-25 04:04

시중 금리가 널뛰고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렸는데 대출 금리가 내려가는 현상이 나타나는가 하면 반대로 예금 금리가 기준금리 인상 폭만큼 오르지 않기도 한다.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시중 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코픽스(COFIX)가 금융당국 수장들 한마디에 오락가락하기 때문이다. 채 한 달도 못되는 시기에 시중금리가 1~2%포인트 바뀌는 등 시중금리 변동 폭이 커지면서 금융소비자의 혼란만 커지고 있다.

24일 전국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코픽스(신규취급액 기준)는 전달 대비 0.05%포인트 내린 4.29%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같은달 유례없는 기준금리 7번 연속 인상을 단행했지만 코픽스는 되레 내리막길로 들어선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지나친 대출금리 인상을 막기 위해 은행의 조달비용에 해당하는 코픽스를 인위적으로 내렸다는 논란이 일고있다.


앞서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권을 겨냥해 직접적으로 수신금리 인상을 자제하라며 압박을 가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금융권 자금 확보 경쟁을 자제해달라”고 밝혔고, 이 원장도 “수신금리 과당 경쟁에 따른 자금 쏠림이 최소화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요 은행 대부분은 코픽스를 토대로 변동형 대출상품의 금리를 책정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코픽스 지표를 직접 내릴 수는 없으니 예금금리를 내리도록 압박해 코픽스를 하락시킨 셈이다.

반면 금융당국의 관여가 없었던 때는 ‘기준금리 인상→코픽스 상승’ 공식이 이어졌다. 지난해 1월 1.64%에 불과했던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지난해 11월 4.34%까지 3배 가까이 치솟았다.

이처럼 양도성예금(CD)금리 대신 코픽스가 도입된 지 13년째이지만 코픽스 역시 CD금리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010년까지만 해도 은행들은 CD금리를 기준으로 대출금리 등을 산출했다. 하지만 은행들이 부르는 호가가 지표에 그대로 반영되는 특성상 시장상황보다는 몇몇 ‘힘 센’ 은행들의 시세조작에 끌려다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 예대마진을 확대하기 위해 은행권이 의도적으로 높은 CD금리를 유지한다는 비판과 함께 담합 의혹도 일었다.

이런 CD금리 대신 도입된 게 코픽스다. 코픽스는 은행연합회가 국내 8개 은행(KB국민·우리·신한·NH농협·하나·한국씨티·SC제일·IBK기업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을 분석해 만든 지표다. 한마디로 은행들이 영업에 필요한 돈을 끌어오는 데 얼마나 비용이 들었는지를 보여준다는 뜻이다.

코픽스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우선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은행들이 대상 월에 신규로 취급한 수신상품 금액의 가중평균금리다. 잔액 코픽스는 대상 월말에 은행들이 보유하고 있는 수신상품 잔액의 가중평균금리를 일컫는다. 이 때문에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은행의 수신금리 변동 상황을 빠르게 반영하지만 잔액 코픽스는 반영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리다. 신잔액 기준 코픽스는 잔액 코픽스와 유사하지만 요구불예금, 결제성 자금 등을 포함해 산출한다. 마지막으로 단기 코픽스는 산출 기간을 더 줄여 해당 주에 새로 취급한 금액만을 대상으로 한다.

금융당국이 예금금리를 틀어막는 표면적인 명분은 대출금리 상승세를 억제하기 위해서다. 예금금리는 은행이 대출상품을 파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비용이다. 금융당국이 은행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 지난해 11월에는 은행권 예금금리가 연 5%를 넘고 저축은행 금리도 7%대를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결국 금융당국은 시장 안정을 위해 코픽스를 끌어내리는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 실제로 당국의 압박이 거세지자 4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지난 6일 최고 8.110%에서 이날 7.148%로 2주 만에 1% 포인트 가까이 내렸다. 은행권에서는 자체 가산금리 인하분까지 더해지면 조만간 주담대 금리가 6%로 내려앉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금 가입자들이 이자를 덜 받게 된 만큼 차주들의 이자 부담이 줄어든 셈이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움직임이 시장질서를 교란시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코픽스가 국내 은행의 수신금리를 토대로 산출되는 것은 수신금리가 금융소비자들의 자금 수요·공급을 비교적 정확하게 반영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국이 은행 영업에 직접적으로 개입해 수신금리를 낮춘다면 시장 상황과 동떨어진 코픽스 수치가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코픽스를 끌어내리는 과정에서 예·적금 위주로 자산을 형성하는 서민들의 피해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불만도 크다. 당국의 개입이 시작되자 5%대에 달했던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3%대로 주저앉았다. 저축은행의 경우에도 5%대 초반 정도가 최고 금리다. 코픽스 추이를 보며 저축 계획을 세우던 이들은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직장인 박모(32)씨는 “저금리일 때는 금리가 낮아서 저축을 못 하고 고금리일 때는 정부가 (수신금리를) 억눌러서 저축을 못 한다. 결국 영끌족의 이자비용을 영끌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가하는 꼴 아니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이 과도한 시장개입을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시장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면 소비자 입장에서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최대한 시장원리를 존중하고 인위적인 수신금리 조정은 자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