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고모할머니의 친필 유언장… “의사 능력 있다면 유효”

입력 2023-01-25 04:03

치매로 임시후견인을 둔 사람이라 해도 일정한 의사 능력이 있다면 유언장이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A씨의 고모할머니 B씨는 생전 중등도 치매를 앓았다. B씨의 조카 C씨(A씨의 작은아버지) 가족은 2016년 B씨의 재산관리 등을 도울 성년후견인 지정을 청구했다. 법원은 정식 판단에 앞서 변호사를 임시후견인으로 선정했다.

이 과정에서 B씨 재산을 놓고 분쟁이 벌어졌다. B씨는 2017년 본인 명의 예금을 A씨에게 전액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자필로 작성했고 2020년 사망했다. C씨 가족은 B씨가 임시후견인 동의 없이 유언장을 작성해 무효라고 주장했다. A씨는 유언 효력을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B씨가 유언장을 쓸 당시 임시후견 상태였기 때문에 유언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의사가 유언장에 심신 회복 상태를 썼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빠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2심은 B씨가 유언 능력까지 제한된 성년후견 단계는 아니었다며 A씨 손을 들어줬다. 2심은 B씨가 중등도 치매 진단을 받기는 했지만, 유언장 의미와 결과는 판단할 수 있었다고 봤다. 유언장 작성 1년 전에도 본인 부양과 재산 관리를 A씨에게 맡겼고, 재산을 물려주겠다는 뜻도 문서로 남겼다는 것이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A씨 승소 판결을 한 원심을 최근 확정했다. 재판부는 “의사 능력이 있는 한 임시후견인 동의 없이도 유언을 할 수 있다”며 “의사가 심신 회복 상태를 적도록 한 민법 조항은 성년후견 개시 전 단계에선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