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국내 가상화폐 시세가 해외 시세보다 높게 형성되는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을 노리고 4조원대 외화를 시중은행을 통해 해외로 불법 송금한 일당을 재판에 넘겼다. 한 시중은행 지점에선 5개월간 320여 차례에 걸쳐 ‘반도체 개발비’라는 허위 명목으로 1조4000억원대 송금이 이뤄졌다. 하지만 은행은 송장 외에 별다른 증빙자료를 요청하지 않았으며, 담당 직원은 실적 포상까지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부장검사 나욱진)는 외국환거래법 위반, 업무방해 등 혐의로 총책 A씨 등 11명을 구속 기소하고 9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18일 밝혔다. A씨 등은 2021년 1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256명의 계좌에서 돈을 모아 홍콩 등 해외로 4조3000억원을 불법 송금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허위 무역대금’ 명목으로 해외업체 계좌로 외화를 송금해 해외 코인거래소에서 가상화폐를 구입했다. 이후 코인을 국내 거래소로 전송한 뒤 이를 매각해 차익을 올리고 다시 해외로 송금하는 수법을 반복했다. 이렇게 거둔 시세 차익은 약 1200억~2100억원에 달한다.
일당은 범행을 위해 무역회사로 위장한 페이퍼컴퍼니 20여곳을 운영했다. 또 변동성이 심한 가상화폐 거래에 대응하기 위해 재정팀 송금팀 해외팀 등으로 역할을 나눠 조직적으로 움직인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이들이 시중은행의 외환 송금 절차상 허점을 파고들었다고 본다. 실제 불법 송금이 진행되는 동안 은행에선 본점 차원의 의심거래보고가 있기는 했지만, 개별 영업점으로는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검찰은 해외로 송금된 자금이 북한으로 흘러간 정황은 아직 없다고 했다.
신지호 기자 p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