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의 시집 ‘충분하다’에는 ‘십대 소녀’라는 제목의 시가 수록돼 있다. 이 시에서 시인은 만약 어린 시절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면 어떨지 상상한다. 그러나 십대 소녀인 그 아이와 자신은 다른 점이 너무나 많다. 소녀는 키도 크고 피부도 매끈하지만 이미 노인이 된 시인은 그렇지 않다. 소녀의 시는 재능이 엿보이지만 미숙하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기에 더욱 당당하게 군다. 친지들은 소녀의 세상에서 아직 살아 있다. 그러나 시인의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다. 소녀와 시인은 별다른 작별 인사도 없이 헤어진다. 그러나 소녀가 사라지던 순간, 실수로 그 자리에 목도리를 두고 간다. 시인은 그 목도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천연 모직에다 줄무늬 패턴, 그 애를 위해 우리 엄마가 코바늘로 뜬 목도리. 그걸 나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마주할 때 나는 심보르스카의 이 시를 떠올린다. 우리는 언제나 과거를 잃어버리며 살아간다. 또한 미래와는 영원히 만날 수 없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라는 시공은 너무나 찰나의 것이라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매 순간 돌이킬 수도 간직할 수도 없는 시간들과 이별한다. 그렇기에 소녀와 시인은 분명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임에도 건널 수 없는 시간의 강을 사이에 둔 먼 타인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을 이어주는 매개물이 있다. 바로 ‘엄마가 코바늘로 뜬 목도리’다.
시인이 소녀에서 노인이 되는 동안 그의 엄마 역시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여전히 살아간다. 소녀에서 노인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시인은 여전히 목도리를 보관하고 있다. 모든 것이 달라진 것처럼 보여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이어주는 사랑의 증거들은 남아 있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변하거나 사라지는 삶의 본질적 허망함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다. 심보르스카의 시는 언제나 이렇게 생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나는 그것이 어쩌면 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김선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