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와 단체교섭을 할 의무가 있다는 법원의 판단은 원청기업을 ‘실질적 사용자’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와 마찬가지로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면 근로계약을 맺은 상대방이 아니더라도 단체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라고 결론 내렸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하청·재하청 노조들이 원청에 단체교섭권을 요구하는 움직임은 더욱 확산할 전망이다.
CJ대한통운 사건의 핵심 쟁점은 근로기준법상 사용자가 아님에도 노조법상 단체교섭 의무를 지는 사용자로 볼 수 있는지다. 재판부는 “원청 사업주가 경영상의 필요나 효율성을 위해 사업이나 업무의 일부를 하도급 주는 것은 기업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면서도 “하청 근로자의 노무에 대해 실질적인 지배 결정권을 보유하는 원청 사업주의 우월적 지위를 고려하면, 하청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한 지배·결정의 범위는 원청 사업주의 의사결정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하청 근로자의 근로3권 행사 범위도 좌우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이는 사실상 하청 근로자의 근로3권 보장 범위나 제한의 정도가 원청 사업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원청 사업주를 실질적 사용자로 인정하지 않으면, 헌법상 기본권인 노동3권을 보장할 수 없다는 것이 재판부의 주요 판단 근거였다.
재판부는 또 택배기사들이 담당하는 집화·배송이 CJ대한통운 사업의 가장 본질적이고 필수적·상시적 업무라는 점, 집배점이 CJ대한통운을 상대로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근로조건이 한정적인 점 등을 들어 중노위와 마찬가지로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에 대해 ‘실질적 사용자’의 지위를 갖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번 판결은 대기업 원청과 하청노조 간 여러 법적 분쟁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노위는 지난해 현대제철, 롯데글로벌로지스, 대우조선해양에 대해서도 원청이 협력업체나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성실히 응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가 낸 단체교섭 청구 소송도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앞서 대법원은 2010년 현대중공업의 사내하청 근로자에 대한 원청 사용자성을 처음으로 인정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근로자의 기본적인 노동조건 등에 관해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는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이 사건은 부당노동행위 중 사용자의 ‘지배·개입 행위’에 대한 것이어서, 일각에서는 CJ대한통운처럼 ‘단체교섭 거부’ 사건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법원은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 유형별로 사용자 개념을 달리하고 있지 않다”며 중노위의 판정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민주노총 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는 “과거에는 사용자와 노동자가 명확했지만 하청이나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같은 다양한 구조가 생기면서 형식적인 근로계약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사용자가 책임을 회피하는 상황이 계속됐다”며 “그동안 법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 측면이 있었는데 이번 판결을 계기로 한 걸음 나아가서 정상화시킨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